시내버스 안에서 창문너머 단상
길가에 제주 봄의 전령사인 벚꽃들이 이리저리 비바람에 나 뒹굴고 있다.
제 수명과 역할을 다 하지 못한 듯, 나 뒹구는 꽃잎마다 아쉬움이 잔뜩 묻어 있는 듯하다.
올봄은 유난히도 꽃샘추위가 길었다. 추운 날씨가 멈추면 비가 오는 날씨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봄 벚꽃이 피어날 시기를 주지 않았다.
제주에서 3월 말 ~ 4월 초에 만개하는 벚꽃은 제주에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전령사다.
제주의 온 섬은 크고 작은 벚꽃으로 덮인다. 그래서 봄은 제주 왕벚꽃 축제의 계절이다. 축제장만이 아니라 제주 온 동네 곳곳에는 벚꽃 천지다. 3월 말경 만개한 벚꽃들은 4월 식목일을 전후해서는 한차례 비가 오면 벚꽃들이 떨어지면서 찬란했던 벚꽃들의 한 해를 마무리한다.
올해는 날씨가 봄축제를 망쳤다.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벚꽃이 피어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벚꽃들이 올 때를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는 예정대로 벚꽃축제가 열렸다. 벚꽃 없는 벚꽃축제, 주인공 없는 드라마다. 날씨가 풀리면서 벚꽃을 피우려고 하는 즈음에는 비가 오기 시작했다. 만개도 못한 벚꽃들이 강한 비를 많아서 그냥 떨어졌다. 길가에 떨어져서 축축 늘어진 채 엎드린 쓰레기가 되었다. 갈 때를 찾지 못하고 본연의 역할도 못한 꽃잎들이 쓰레기가 되어 청소부들의 빗자루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연일 언론이 난리다. 전국적인 판세가 어떻고, 주요 이슈가 무엇이고, 어떤 당의 후보는 뭐가 문제고, 상대당의 후보는 예전 유튜브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안 된다. 우리는 뭐를 해드릴 테니 믿어달라. 국민들을 위해서 일하겠노라고 하는 선량들을 뽑는 국회의원 선거 때문이다. 모두가 최고다. 본인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고, 상대방은 결점투성이다. 똑같은, 비슷한 사안도 나는 괜찮고, 너는 안된다. 무소불위의 내로남불이다. 가스라이팅의 전형적인 예를 많이 본다. 평소에는 좋은 얘기 상식적인 얘기를 많이 하던 사람도 그 판에 들어가면 "저 사람이 왜 저리지" 할 정도, "그 사람이 맞아" 할 정도로 그들만의 정치학적 문법을 구사한다.
아침 중앙로 근처에서 회의가 있어서 시내버스로 나가는 중이다. 구도심이라 주차장이 없기에 이 동네를 갈때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는 센스가 있어야 한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남의 차를 타고 갈 때는 손과 머리가 자유스러워 좋다. 아무거나 만질 수도 있고, 온갖 잡념과 망상을 해볼 수도 있어서 좋다. 창가 너머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니 아스팔트와 인도에는 비를 맞은 벚꽃들이 쓰레기가 되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다. 어지럽고 지저분하다. 길가의 미관을 해친다. 빨리 치워주었으면 좋겠다.
벚꽃은 제자리에 있을 때는 무척 화려하다. 많은 사람에게 부러움의 대상이고 기쁨을 준다. 지금 떨어져서 길가를 나뒹구는 벚꽃에서 얼마 전 그런 화려하고 이쁜 모습은 없다. 그저 쓰레기다. 조금이라도 빨리 청소부들의 손길이 와 닿기를 기다릴 뿐이다.
길가에 쓰레기가 되어 나 뒹구는 벚꽃을 보고 있자니, 요새 몇 일사이 내가 들은 뉴스들이 내 귀를 맴돈다.
불현듯 두 개의 현상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