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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Sep 13. 2024

9월 어느 날 벌초 일기

나도 잊혀진 사람이 되겠지..

"고생하셨습니다. 저녁에 맛있는 거 사드세요."

늦은 오후 벌초를 마치고 올 무렵 단톡에 들어온 메시지다.      



제주에서는 9월 첫째 주 일요일이나 음력 8월 초하루를 기준으로 벌초하기 시작한다.

추석 차례를 지내기 전에 모든 벌초를 마치기 위해서다. 올해는 9월 첫째 주 일요일이 9월 1일이다. 벌초 시기가 일찍 찾아왔다. 예년에는 9월 중순경 벌초를 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미리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날씨는 아직도 한 여름이다. 산소들이 있는 곳은 오름이거나, 마을 공동묘지라서 가는 길이 쉽지는 않고, 대부분 그늘이 없다. 큰 나무들이나 숲이 있으면 잔디가 자라지 못하거나 습기가 찬다고 모두 정리를 해버렸다.  

    

제주의 산소들은 곳곳에 있는 오름 등성이나 정상, 심지어는 한라산을 가는 길까지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대부분 사방이 탁 트이고 높은 곳으로 전망이 좋은 곳이다. 옛날 특별한 장비가 없던 시절이다. 왜 그 무거운 상여를 들고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자못 궁금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망자를 위함인지? 후손을 위함인지?” 늘 벌초 때면 내 머리를 맴도는 화두다.

       


애월읍의 극과 극에 떨어져 있는 2개의 오름에 선산이 있다.

오름이라 가는 길이 험할 뿐만 아니라 하나는 그늘 하나 없는 오름 꼭대기, 하나는 방목지 오름 허리 소나무 숲에 있어서 벌초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수십 년 전 묘를 쓸 때 환경하고 지금의 환경이 많이 달라져서 매번 갈 때마다 산소를 제대로 찾아내는 게 선결 과제다. 2개의 오름 선산을 벌초하는 게 다른 선산 5~6개의 벌초를 하는 것 이상의 고생길이다. 오름 벌초가 끝나면 올해 벌초는 반 다 했구나 하고 중간 결산을 할 정도다.  

     

오늘은 오름을 제외한 나머지 선산 벌초만 하면 된다.

산소가 있는 곳들이 유심재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5기를 오늘 모두 할 계획으로 아침 7시에 길을 나섰다. 오전 중에 마치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과수원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를 먼저 찾았다.

매년 벌들이 있어서 긴장하게 만드는 곳으로, 몇 년 전에는 벌에 쏘여서 한참 고생을 한 적이 있다. 이 산을 찾을 때마다 늘 어머니가 하시는 말이다. “평소 할아버지 성격 닮아서 벌들이 많은디여..”무슨 의미인지 대충 짐작이 된다. 감귤나무마다 맺힌 빗물과 아침이슬이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래서 아침 공기는 좋다.

      

조금 떨어진 마을 공동묘지에는 4기의 산소가 있다.

제일 많은 곳이기는 하나 산담이 없는 공동묘지라 벌초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러나 그것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얘기다. 공동묘지를 들어서는 순간 아연실색이다. 둥그런 칡잎에 광활한 공동묘지 전체를 덮고 있다. 어느게 길이고, 어느 게 산소인지 구별이 안 되는 형국이다. 여기는 나무 그늘도 없다. 온통 산소뿐인데, 그 위를 넓다란 칡잎이 덮고 있으니, 산소를 찾는 길, 벌초하는 일이 막막하다. 낫으로 산소를 감싸고 있는 칡덩굴을 제거하면 예초기로 풀을 배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그러나 그건 칡덩굴이 하나둘일 때 얘기다. 칡이 온통 산소를 덮고, 그 밑에 억새들이 자라지 못하고 물을 먹고 썩거나, 누워있는 상태라 초벌 작업은 아예 불가능이다. 유일한 기계인 예초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예초기를 이러 저리 휘두르면서 칼싸움으로 칡넝쿨을 잘라냈다. 1시간여의 칼싸움으로 깔끔하게 벌초는 되었으나 나는 엉망이다. 지치기도 하거니와 유독 땀이 많은 체질이라 상하의가 물에 빠진 생쥐다. 이제 이런 작업을 3번 더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이다. 더이상 움직일 수가 없어서 벌초를 중단했다. 유심재로 철수하고 이후 상황을 보기로 했다. 샤워를 하고 몸의 기운을 충전시켰다. 오직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피할 수 없는 일, 늦은 오후 다시 벌초에 나섰다.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비날씨를 맞을 것 같기도 했다. 늦은 오후라지만 여전히 마을 여기저기서는 예초기 소리가 들린다. 다음 주 말부터는 연휴라 이번 주에는 마무리해야 하기에 모두가 급한 모양이다. 오전에 벌초를 많이 한 듯 공동묘지 산들의 모습이 오전하고는 확연히 다르다. 그래도 칡덩굴을 헤치고 산을 찾고 벌초를 해야 하는 상태는 여전하다. 벌초가 아니라 칡덩굴 제거 작업이다.

항상 이 때쯤이면 늘 "내년에는 봄 벌초를 해야지.."하고 다짐한다. 봄에 풀과 칡들이 막 자라기 시작할 때 제거해주면 가을 벌초는 훨씬 수월하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봄 벌초를 한다. 그러나 이 생각은 벌초가 끝나면 잊어버린다. 마음뿐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2024년 올 한 해 벌초도 무사히 마쳤다.

아내가 아무런 불평 없이 동행해 준 덕택이다. 유심재에 오니 저녁 시간이 넘었다. 겨우 샤워하고 마루에 드러 누웠다. 밖에는 유독 하늘이 파랗게 보인다. 만사가 귀찮다. 중노동을 했더니 배꼽시계가 작동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부부만 저녁을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럴 때 아내에게 뭐를 해서 먹자는 말을 꺼내는 것은 중범죄다.      

"집에 갈 때 마트에 들려서 초밥이나 사고 갈까?" 초밥과 생선회를 유독 좋아하는 아내에게는 최고의 음식이다. 오늘 하루 벌초를 하느라고 고생했으니 풍성한 저녁쯤은 당연한 것도 같다. 곁들여서 소맥도 한잔하면 오늘 밤을 굿나잇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텔레파시가 통했을까? 이심전심이다.      

"가는 길에 맛있는 거 드시고 가세요"라는 단톡 메시지가 들어왔다. 엄빠의 동태를 살피던 첫째가 벌초하느라 고생한 것에 대한 성의 표시란다. 둘만 사는 생활이라 가끔 애들은 우리의 저녁 안부를 묻고 저녁을 해결해 준다. 오늘은 첫째 차례인 모양이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저녁과 소맥 안주로 1타 2피를 하려던 초밥은 SOLD OUT이다.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왠지 시원한 물회가 당기길래 한치물회를 카터에 담았다. 메인 메뉴인 초밥이 없으니 대타인 생선회를 살 생각으로 동네슈펴에 들렸다. 아내와 내가 각각 좋아하는 생선회를 샀다.      

역시 땀을 흘린 후 마시는 한 잔의 소맥은 최고다. 피곤을 잊게 해준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물길을 느낄 수가 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아무리 저어봐도 보이지 않는 한치물회는 갈증을 해소하는 데는 최고다.

      


매년 하는 벌초다.

보통 우리가 일을 할 때는 목표와 목적이 있다. 그러나 벌초는 벌초 자체가 목표고 목적이다. 산이 저기 있음에 오르듯이, 매년 9월이 되면 벌초한다. 일종의 긴 습관이다. 나의 의지나 뜻과는 어쩌면 무관한 일이다.


이날만큼은 비석에서 선조의 이름을 한 번씩은 읽어본다. 이름과 나와의 관계는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얼굴은 모른다. 어찌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냥 그분이 있었음에 지금 내가 있다는 정도가 전부다.

먼훗날 나도 우리 후손들한테 그런 사람이 되어 있겠지.  

    

매년 이맘때쯤 벌초를 끝내고 마시는 한잔 술에 담아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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