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군고구마가 아닌 삶은 고구마와 감저 빼떼기다. 감저 빼때기는 고구마를 햇빛에 바짝 말린 것으로 제주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늦가을 고구마 수확철이 되면 어머니는 고구마 이삭 줍기를 다녔다. 고구마 수확이 끝난 밭에 들어가서 남은 이삭을 줍는 일이다. "주인이 다 수확하고 갔는데, 이삭 주울 게 있겠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요즘 같이 기계가 있는 것도 아닌 시절, 골갱이(제주에서 호미를 부르는 말) 하나로 굳어버린 밭을 일구면서 고구마를 수확하고 난 후라 주워올 이삭은 많았다. 재수 좋은 날은 2~3개의 포대를 채우고도 남는 날이 있다. 자가용도 없던 시절이라 집으로 가져오는 게 걱정이다.
내가 시간이 되는 날이면 나는 어머니의 이삭 줍기에 따라나선다.
어머니의 말 벗, 길 벗이 되기 위함이다. 혹시나 운수가 좋은 날이면 넘치는 고구마를 집까지 운반해야 하는 짐꾼의 역할도 해야 하기에 그래로 집안의 장남인 내가 같이 가는 게 효도다.
이삭 줍기를 하는 밭들은 집에서 멀이 떨어진 곳이다. 드문 드문 오는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한다. 이삭을 줍고, 버스정류장으로 옮기는 일, 버스에 싣는 일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나는 당연히 따라나섰던 것으로 기억한다.
놀이 문화가 없던 시절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곳으로 버스를 타고 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탁 트인 곳에서 무턱대고 땅을 파다가 하나둘씩 솟아 나오는 내 주먹만 한 크기의 고구마는 어린 나에게 횡재라는 단어를 알게 한 것 같다. 가끔은 어머니의 눈길을 피해서 한가운데 모아놓은 고구마 줄기에 않아서 쉬기도 했다. 줄기에 남아있던 바싹 말라버린 조그마한 고구마를 옷에 대충 닦고 먹어본다. 말라서 부드러운데, 입을 가득 채워주는 녹말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머니는 욕심이 많다. 욕심이라기보다는 많은 자식들에게 주기 위해서는 모든 게 많아야 하기에 생긴 당연함이 아닐까 한다. 수확물이 어느 정도 이상이 되지 않으면 돌아서는 일이 없다. 가끔은 초저녁 이삭 줍기가 되는 날도 있다.
어머니는 부지런하고 손이 빠르기도 하다.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했으나, 내가 반도 가기 전에 어머니는 반환점에서 돌아오고 있다. "그 추록 늦엉 어떵 벌어먹고 살거니.." 어머니가 걱정의 한마디를 던지고는 휙하니 돌아선다.
어머니는 힘도 세다. 보통 고구마 포대 2개 정도는 그냥 등짐을 졌다. 무리하면 3개까지도 질 수 있으나, 그것은 나의 몫이다. 같이 간 값을 해야 하기에, 나도 자랑스럽게 집으로 들어서야 하기에 가장 작은 포대짐을 하나 진다.
수확물이 좋은 날, 2~3개의 포대를 지고 집으로 들어서는 날이면 어머니의 목소리는 커지고, 의기양양해진다. 마당 한가운데에 고구마를 모두 쏫아놓고 분류작업을 하는 것은 우리 가족 모두의 일이다. 5남 4녀에 부모님 11명이 들어서면 고구마를 분류하는 것은 순간의 일이 된다.
어렵던 시절 고구마는 간식이 아니라 주식이다. 한 끼 식사 대용이다. 손이 빠른 어머니는 일단 크기가 작고, 캐다가 손상을 입어서 보관이 어려운 고구마를 씻는다. 그리고 한솥 가득 삶기 시작한다. 11명의 식구가 2개씩만 먹어도 22개, 3개씩 먹으려면 33개를 동시에 삶아야 한다. 집에서 가장 큰 솥에 넘치도록 고구마 탑을 쌓아놓고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핀다. 연탄불 아궁이는 솥에 비해 크기가 작다. 불도 너무 약해서 많은 고구마를 삶을 수 없다고 항상 장작불을 이용했다. 매번 벌어지는 대소동이다.
고구마는 크게 3가지로 분류를 한다.
마당에서는 여전히 고구마를 분류하는 작업 중이다. 크게 3가지로 분류를 했다.
적당하게 크고, 아주 상태가 양호한 고구마로 저장이 가능한 것들이 우선이다. 고구마는 겨우내 먹어야 할 비상식량이자 간식거리다. 그러자면 저장성이 좋아야 한다. 냉장고나 저온 저장시설이 없던 시절이다. 겨울이면 눈도 내리고 적당히 추웠다. 집 뒤편 우영팟에 땅을 적당한 깊이로 판다. 어른들의 팔이 들어가고 남을 정도, 1m 내외일 것이다. 저장할 고구마의 양에 따라서 깊이나 넓이가 결정되기도 한다. 바닥에 짚은 깔고 고구마를 넣는다. 그리고 위에는 보리짚으로 덮게(제주어로 눌)를 만들어서 덮는다. 비나 눈이 직접 들어가지 않게 돌아가면서 막음을 잘해야 한다. 그러면 땅이 저온이기에 겨우내 고구마는 잘 썩지도 않고, 숙성이 돼서 맛있는 고구마가 된다. 일종의 천연저장고다. 필요할 때마다 눌을 열고 고구마를 꺼내서 먹으면 된다.
어머니의 눈을 피해서 가끔은 눌 사이로 고구마를 슬쩍한다. 제대로 씻지도 않고, 집에서 멀리멀리 사정권을 벗어나서 생체로 먹는 맛은 지금 생각만 해도 입가에 침이 돈다. 늦게 집에 돌아온 시간 입가에 묻은 흙자국으로 인해 특수통인 어머니에게 들키고 탈탈 털리는 날도 있었다.
고구마를 저장하던 눌의 모습,
비교적 큰 고구마이긴 하나, 일부 손상이 되었거나 못생긴 고구마로 감저 빼떼기의 대상이 되는 고구마다.
남는 것은 당장 쪄서 먹을 고구마들이다. 포대에 담아서 부엌이나 낭간 한편에 두었다가 쪄서 먹는다.
눈이 퐁퐁 내리는 날, 밖으로 나갈 수 없게 앞마당에 눈이 소복이 쌓인 날은 할 게없다. TV도 없던 시절이다. 온돌이 잘 드는 안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웃풍이 있어서 쌀쌀하기에 이불을 꺼내서 발만 덮었다. 서로의 얼굴만 멀똥멀똥하게 쳐다볼 뿐이다. 그런데 입이 심심하다.
"감저나 쪄 먹으카.." 어머니의 일성에 모두 환호를 한다.
우영팟에 가서 눈을 치우고 추운 손을 호호 불면서 천연 저장고 속의 고구마를 가져온다. 20~30개를 가져와야 하니 보통일이 아니다. 가져온 고구마을 씻는 것도 큰일이다. 마당 한구석에 있는 수돗가에서 찬물로 씻다 보면 이내 손에 감각이 없어진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고구마 삶기는 잠시 후면 고구마가 익은 냄새, 바닥에 눌어붙는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진다. 맛있는 냄새다.
다 익은 고구마는 어머니의 손에 의해서 확실하게 1/N로 강제 배분된다. 먹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