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제대 D-100일 날..
"집까지 D-100" 오늘 아침 THE CAMP라는 앱을 열였더니 하단에 선명하게 뜨는 문구다.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공식적으로 인증이 되는 느낌이니 눈에 확 들어온다.
2024년 3월 5일, "집까지 D-549"에서 시작한 일이다.
500 단위라 5층이라고 부른다. 멀게만 느껴지던 시간들이 흘렀다.
아들이 군에 입대한 지 449일이 지났고, 앞으로 100일만 있으면 제대를 한다는 얘기다.
은퇴를 하고 사회에서 인정하는 어르신인 노년을 바라보는 60대 중반이다.
한 달 두 달 세월이 흐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게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부터 올해까지 세월이 간다는 게 이렇게 기다려지고 즐거운 일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작년 늦둥이 아들을 군대 보내놓고 생긴 변화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할 때 시간은 참으로 더디 흐른다. 일각이 여삼추(一刻如三秋)다.
입대를 하고 5주 동안 신병교육대에 있는 기간 하루는 참으로 길었다.
아침에 깨어나면 언제 저녁시간이 될까 휴대폰의 시계만 쳐다봤다. 일과가 끝나고 전화를 받으면 "오늘도 무사히" 아무 일도 없었음에 감사를 했다. 그렇게 모여서 1주일이 되고, 2주일이 되고.. 5주가 돼서 수료를 했다.
다시 후반기 교육을 위해서 강원도로 이동했다. 다시 그만큼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 덕택에 작년 어버이날 가족들은 강원도에서 보낼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게 계획에 없는 일들이다.
또 하나 무계획했던 일이 발생했다.
아들이 노래를 부르고 다니던 곳, 꼭 피하고 싶다던 곳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그날, 2024년 5월 14일은 잊을 수가 없다. 가족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힘들어하던 날이다.
사관학교를 나왔지만 별을 못단체 아쉽게 퇴역한 두 동생에게 하소연을 해봤지만 "어찌할 수 없다"는 대답에는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로서 어찌해 줄 수도 없고, 다른 방법을 제시해 줄 수도 없기에 그저 참아보자는 말밖에 못 하던 날이다.
그렇게 참아보자던 세월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부모는 자식이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할 때 한없이 작아지고,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이병에서 일병 진급을 하고, 외출도 하고, 외박도 하면서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지나서 휴가도 다녀가고, 이따 금식 서울에 있는 누나집을 다녀가기도 했다.
일병에서 분대장을 하고, 다시 상병 진급을 하고 이젠 부대에서 최고참이 되었다고 매일 노래를 부른다.
"진급심사도 모두 통과했습니다." 다음 달에는 짝대기 4개 병장입니다.
그저 시간만 채우면 짝대기 하나씩 늘던 시대가 있었는데 이제는 체력측정이나 사격들을 모두 일정기준 통과해야 진급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군대는 여전히 아들을 남자답게 만들어주는 면이 있는 모양이다.
사격이나 체력측정 때문에 제때 진급을 할 수 있을는지 걱정했었는데 척척이다.
휴가 때 내려온 모습을 보니 키도 더 커진 듯하고, 어깨도 제법 떡 벌어져서 사내다운 냄새가 난다.
일과 후에 헬스장에서 체력단련도 하고 매일 저녁 5KM 달리기도 한다고 하는데, 현장에서 직접 볼 수가 없으니 그리고 체격이 달라졌음을 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멀리 떨어져 있고, 얼굴을 볼 수 없음에 아들과는 카톡으로 소통을 했다.
휴대폰을 열고 아들과의 지난 단톡을 열었다. 그리움의 깊이만큼씩 카톡의 대화수는 달려있었다.
신병교육대에 있을 때는 매일 아침인사로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도 전체 보기를 해야 보일만큼 장문이었다. 그 메시지를 모아서 책으로 엮어서 보내기도 했다.
차츰 세월이 흐르면서 카톡주기가 매일에서 1주일로, 한 달로 변하더니 이젠 살만한 모양이다. 3달이 넘었다. 마지막 메시지가 2025년 1월 22일이다.
물론 아들과의 개인톡을 얘기한다. 가족 단톡은 매일매일 얘기를 주고받는다.
입대 후 100일인 2024년 6월 2일 보냈던 메시지를
제대 100일이 남은 2025년 5월 27일 다시 보내주었다.
같은 문장인데 들어갈 때의 느낌과 나올 때의 느낌이 어떨지 궁금해서다.
흔히들 남자들은 군대복무 전후의 변화를 많이 얘기한다.
군대라는 게 과연 내 인생에 어떤 의미였나 하는 질문이다.
보통은 "남자다워졌다, 참을성이 좋아졌다, 어른스러워졌다, 사회성이 많이 좋아졌다"라는 말로 대신한다.
낯선 계급사회에서 낯선 사람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어색한 생활, 희망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강제적이고 의무이기에 할 수 없이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다른 곳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우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이다. 그걸 뭉뚱거려서 성장이나 남자다움으로 얘기한다.
이제 나의 늦둥이 아들은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을 하고 제대를 할 것이다.
내가 가르쳐줄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가슴 가득 담고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말이다.
100일 남은 기다림이 더 이상 지루해지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