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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Apr 14. 2023

제주의 봄나들이.. 고사리 꺾기는 축제다

제주의 봄날 고사리 꺾기

봄철 제주의 들녘은 고사리꺾기로 시작된다. 제주의 고사리는 "산에서 나는 소고기"란 별칭이 있을 정도로 맛과 영양이 좋다. 크고 굵으면서도 연하고 부드러워 품질 좋기로 유명하다.


" 고사리 꺾으래 갔다완?  고사리 이서냐? 얼마나 꺽언?"

봄철 동네에서 사람들이 만나면 흔히 하는 인사말이다.


제주의 봄철 나들이는 고사리 꺾기다. 고사리는 주로 오름과 곶자왈, 들판 등 중산간 지역에 분포한다. 매해 봄철만 되면 관광지도 아닌 인적이 드문 중산간 도로 갓길에 차가 빼곡히 주차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른 아침 시간, 길가에 차를 주차해 놓고 인근 임야지대로 들어가서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이 타고 온 차량이다. 임야지대에 무분별하게 자라난 자연산 고사리를 꺾는 것이기 때문에 일정한 장소는 없다. 다 본인들만이 아는 장소, 본인 들만의 노하우가 있는 장소를 동네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찾는다. 차가 1대만 세워져 있는 곳은 고사리 꺾기장소가 아직은 덜 공개된 장소, 차량이 많은 곳은 아주 공개된 곳일 것이다.


이 행렬에는 고급 승용차, 외제차, 심지어는 렌터카도 많이 보인다.

육지에서 제주 고사리를 꺾으러 매년 오는 원정대가 있다. 고사리를 꺾다 보면 육지에서 왔다는 고사리 원정대 아줌마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제주에서 며칠씩 살면서 고사리를 꺾는다. 심지어는 관광객들이 이때를 맞춰서 오는 경우도 있다. 제주산 고사리는 청정 자연산이라 구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가격도 꽤 비싸다. 주위분들을 보면 멀리는 일본에 보내는 사람도 많고, 서울이나 육지부에 정기적으로 판매하는 사람도 꽤 있다.   


고사리는 조상님 제삿날 제수상에 올리는 필수 품이다.


"내일, 모레 고사리 한 줌 해먹을 일 이서"

동네 삼춘들이 흔히 하는 대화로 집에 제사가 있다는 말이다.

다른 것들은 돈을 주고 사서 올리면 된다. 하지만 고사리는 본인이 직접 꺾어서 말렸다가 제사상에 올리는 것을 최고의 정성으로 여긴다. 본인이 동참하지 못하는 제사가 있는 경우 미리 직접 꺾은 고사리를 보내서 정성을 표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제사가 있는 가정에서 매년 봄 고사리 꺾기는 필수다.


바로 꺾은 고사리를 말리지 않고 바로 삶아서 먹는 맛은 봄철 밥상의 특미다.

생 고사리를 씻고 삶아서 고사리 무침으로 먹어도 맛있다. 줄기가 톡톡 터지면서 나오는 즙의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육개장을 끊여서 먹어도 맛있다. 봄날 제주에는 " 고사리 삼겹살"이라는 메뉴가 인기다. 삼겹살을 구울 때 고사리를 같이 구워서 먹는다. 삼겹살과 고사리가 뭉쳐서 색다른 맛을 준다. 이런 맛에 제사가 있는 없든, 이제는 가정에서 봄철 반찬으로 누구나가 고사리를 꺾으로 간다. 이제는 제주에서 봄철 고사리꺾기는 누구나가 동참하는 봄 나들이다.  

"고사리는 남자들한테 안 좋아, 많이 먹으면 남자 구실을 못한덴"

어린 때부터 주위에서 종종 들었던 어른들의 얘기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자녀들이 고사리 먹는 것을 말리기도 하고, 어른들 중에는 아직도 고사리를 안 먹는 분들이 주위에 종종 있다. 사실일까?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삶아서 그냥 먹어도 너무 맛있기에 종종 런 말을 한적 도 있다.


" 너무 맛있는데.. 우리가 못 먹게 어른들만 먹젠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고사리는 정말 남성 정력에 안 좋을까?


고사리는 소도 먹지 않는다. 우마를 방목하는 목장에는 고사리만 남는다. 음식으로는 한·중·일에서만 먹고, 서양에선 독초라 여겨 먹지 않는다고 한다.


△ 生고사리는 ‘양기를 빼앗는다’


중국 당대에 전문의서인 식료본초(食療本草), 본초몽전(本草蒙筌)과 우리나라의 본초강목(本草綱目),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모두 고사리의 위험성을 언급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고사리를 많이 먹으면  ‘다리에 힘이 빠진다’고 하고 있다. 이는 고사리에 들어 있는 티아미나아제(thiaminase) 때문으로 보고 있다. 티아미나아제는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신경과 근육 활동 등에 필요한 영양분으로 육체 피로 해소를 돕는 비타민 B1인 티아민을 분해해 버린다. 티아미나아제가 많을수록 티아민이 부족해져 ‘각기병’이 생길 수 있다. 각기병(脚氣病)은 이름 그대로 다리 힘이 약해지고 저려 보행 곤란을 유발하며, 신경 장애, 단기 기억 상실, 식욕 저하, 근육통 등을 동반한다. 티아민이 부족할 때 동반되는 불안, 초조, 피로, 신경장애 등이 있다면 성 기능이 좋아질 리 없다.

 

△ 독소 빼낸 삶은 고사리는 ‘고단백 영양식’

생고사리 속 몸에 해로운 물질들은 물에 잘 녹아 빠져나온다. 열과 알칼리에 약하기 때문에 물에 하루 정도 담가둔 다음 살짝 데치는 수준이 아니라 10분 이상 충분히 소금물에 삶은 후에 섭취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사리는 나물 중에서도 단백질 함유량이 많고, 식이섬유가 풍부하며 칼로리가 낮다. 칼슘과 칼륨 등 미네랄이 풍부해 뼈 건강에도 도움이 되며, 아미노산 종류인 아스파라긴과 글루타민이 풍부하다. 아스파라긴은 숙취 해소에, 글루타민은 근육생성에 도움이 된다. 삶은 고사리는 저칼로리 고단백 식품으로 비만 예방은 물론 성 기능 강화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제주에서는 삶은 고사리를 먹는다.


제주에서는 고사리를 꺾으면 먼저 손을 비벼서 털어낸다. 고사리 손이란 자라서 고사리잎이 될 고사리 줄기 끝에 달려있는 부분이다. 다 털어낸 고사리는 씻고, 쌂고, 잘 말려서 보관을 했다. 제사가 돌아올 때까지 부패하지 않고 관리하기 위한 방법이다. 1년이고 2년이고 문제가 없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우리 조상들의 지혜다.

지금도 대부분은 말려서 보관하지만, 냉장고 덕에 말라지 않고 그냥 보관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삶았을 때 고사리의 원래 맛을 느끼면서 먹을 수 있어서 더욱 맛이 좋다.     



자연산 야생 고사리를 꺾기..
 해프닝도 종종 발생한다.


대부분 고사리는 남의 임야에 들어가서 꺾는다. 땅 주인과의 해프닝이 발생한다.

자연산 고사리는 대부분 임야나 오름 주위 야산지대에서 자란다. 땅주인들이 농사를 하지 않는 곳이다. 방치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사용하는 곳이 우마를 방목하는 정도다. 그런데 우마는 고사리는 안 먹는다. 고사리 주위 무성하게 자라는 풀들만 먹어주기에 오히려 고사리는 선명하게 보여서 꺾기에 좋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는 땅을 개간하거나 우마들의 관리를 위해서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는 땅 주인과 고사리 꺾는 사람들의 숨바꼭질이  종종 발생한다.


" 무사, 남의 땅에 들어완 고사리 꺾어쑤과? 여기는 외부인이 들어 오민 안됩니다. 빨리 나갑써.."

" 이제 금방완 꺽엄쑤다. 조금만 꺽으당 가쿠다.."

" 안됩니다. 빨리 나갑써.."

" 무사 당신네가 재배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적으로 난 건디 못 하게 햄쑤과.."


고사리를 꺾으로 갔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제주 길 잃음 사고의 절반이 이때 발생, 최근 3년간 113건이 발행했다.
고사리 꺾기 현장은 대부분 비슷비슷하게 소나무와 가시덤불이 우거진 임야다.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장소를 특정 짓기가 매우 어렵다.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땅과 고사리만 보면서 누비다가 보면 엉뚱한 장소에 와 있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방향을 잃어버린다. 같이 출발을 했는데 각자 열심히 꺽다보면 지금이 어디인지 이젠 서로를 못 찾게 된다. 가끔 들녘에서는 누구 엄마를 찾는 고요 속에 외침이 들릴 때도 있다. 같이 갔던 동반자를 찾는 애원의 목소리다. 이젠 행정에서도 고사리꺾기철이 되면 아예 "봄철 길 잃음 주의보"를 발령하기도 한다. “고사리 채취 때는 길 잃음 사고에 대비해 일행과 동반하고, 휴대전화와 보조배터리, 호각, 여벌옷, 물 등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면서 “단독행동을 피하고 항상 일행과 함께 이동하고 길을 잃었을 때는 119 신고 후 이동하지 말고 구조가 될 때까지 기다려달라”라고 구체적인 행동요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남자들도 고사리를 꺾는다.

예전에는 고사리꺾기는 대부분 여자들만의 행사였다. 남자들이 허리를 계속 숙이면서 조그만 고사리를 하나둘 계속 꺾어야 한다는 게 남자스럽지 못하다는데서 기인한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술자리에서도 남자들의 고사리꺾기 무용담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젠 남자들도 꽤 고사리 꺾기에 나선다.


"한참 고사리를 꺾는데 갑자기 수풀 속에서 남자 한 사람이 나와서 놀랐네.."

"이젠 남자들도 혼자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아무도 없는데서 갑자기 만나면 겁나.."

언제부터인가 고사리를 꺾으러 갔다 온 동네사람들이 하는 얘기다.

고사리가 고가에 팔리고 인기상품이 되면서 혼자 전문적으로 고사리꺾기를 하는 남자들이 등장했다. 이른 시간부터 혼자 산속을 누비고 다닌다. 제주도 고사리꺾기 역사의 새로운 강자가 탄생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지? 제주도 남자들은 혼자서 못 갈 건데.. 가도 누구 데려 다니지"


아무도 없는 들판 숲 속에서 일행을 벗어나 고사리를 꺾다가, 불쑥 숲 속에서 튀어나오는 낯 모를 남자와 맞닥뜨리는 상황은 여자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시쳇말로 겁오줌을 쌀 정도라고 한다.

봄바람도 쐬고, 고사리도 꺾고, 동네 사람들과 수다도 떨 겸 나가는 봄 나들이 고사리 꺾기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예 부부와 같이 가거나 동네 남자삼촌을 같이 데려서 가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제는 고사리 들판에 가끔씩은 남정네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고사리는 비가 온 다음날이 많아. 누가 오기 전에 미리 가서 꺾어야 한다.

고사리의 생명력을 대단하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매일매일 꺾어도 고사리는 언제나 미쭉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반겨준다. 봄철이 지나고 성묘를 가다 보면 임야에 남아있는 게 온통 고사리다. 고사리 꾼들이 봄날 발견을 못하고 이미 제철을 벗어나 먹을 수 없는 고사리들이다.

땅속에서 벗어나 손가락 크기를 벗어나는 고사리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비가 온 다음날 고사리를 눈에 띌 정도로 자라 있다. 비 온 뒤 더욱 잘 자라는 고사리 때문에 제주에서는 ‘고사리 장마’라는 말이 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면 더욱 빛이 난다. 숲 속에서 우뚝 솟은 고사리줄기를 발견하고 기쁜 마음에 손내밀었는데 이미 윗부분이 잘린 흔적을 발견하면 허탈해진다. 앞선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다. 그러기에 봄날 고사리꺾기는 전쟁이다. 날이 밝기만 하면 나선다. 새벽 5~6시에 출발하는 사람이 많다. 먼저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잡는다니 말이다.


고사리 꺾기는 제주의 역사와 문화다.
그리고 축제다.

제주의 4~5월 봄철 고사리꺾기는 이벤트가 아닌 제주의 고유문화다.

자연의 섭리를 최대한 이용하여 우리의 삶과 문화를 만들었다.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고 정성으로 모시기 위한 방법을 인간의 고향인 자연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제주본래의 문화들은 개발과 돈벌이라는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본래 의미를 잃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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