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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Apr 21. 2023

올해는 고사리가 없네..

2023년 첫 고사리꺾기를 마치고서

6시 15분, 이른 아침에 차에 시동을 걸었다.

퇴직 전에도 이 정도 이른 시간에 차를 움직여본 건 거의 손을 꼽을 정도다.


오늘은 올해 첫 봄날들이, 고사리를 꺾으러 서귀포로 가기로 한 날이다. 햇빛이 나면 다소 어지럼증을 타는 오늘의 길 안내자인 누나를 고려한 선택이다. 집에서 누나가 사는 서귀포까지는 거의 1시간 정도 걸린다.



제주에서는 제사상에 올리는 고사리만큼은 본인이 직접 채취한 것을 사용하는 것이 정성이라고 여기는 풍습이 있다. 나는 1년에 3번 제사와 차례를 지낸다. 따라서 고사리철이 되면 봄 나들이를 해야 한다. 특히 구순이 훨씬 넘으신 어머니는 본인이 직접 나서서 해주지를 못하니 미안한 모양이다. 매년 이때쯤이면 어머니는 곁에 사는 누나를 불러서 고사리꺾기 출정 분위기를 잡아주신다.


"올해 먹을 고사리는 놈들 다해불기 전에 몇 번 갔다 와야 헐건디" 라고 볼 때마다 재촉하신다.

이렇게 준비된 오늘의 봄나들이다.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에는 매년 고사리를 꺾고 말려서 나눠주셨다. 워낙 선수라 왠 만한 사람 2-3명분은 족히 하신다.


" 고사리 말려 놔시난 왕 가져가라. 그리고 막내 고사리 잘 먹는 게 안 말린 것도 이시난 가져다주고"

매년 이때쯤 걸려오는 어머님의 전화였다. 막내 손자가 고사리 볶음을 잘 먹는 것을 여겨 봤는지 매년 챙겨주시곤 했다. 오늘은 고사리 꺾기를 빨리 마치고, 점심때쯤 어머니를 모시고 한참 제맛이라는 자리회를 먹으러 보목리 포구로 갈 예정이다.


평화로를 타고 서귀포 가는 길, 오늘이 첫 출전인 우리 부부는 여러 가지 상상을 한다.

덥지나 않을까? 사람들은 많을까? 얼마나 할 수 있을려나? 어디로 가지...

아침 이른 시간이라 평화로 길은 한적하기만 하다.



7시에 만나기로 했던 누나는 10여분 정도가 늦자 미리 집 앞에 나와서 대기 중이었다.


" 어디로 가까?"

" 그래도 작년에 했던 곳이 좋지 않을까? 거기로 가게.."

작년에 일정에 없던 고사리 꺾기로 대박을 쳤던 장소다.

내 손의 2 배정도 되고 아주 굵고 실한 고사리를 알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경헌디. 올해는 주위에서 거기 갔다왔덴 헌 사람들이 너무 많안게..고사리 이실 건가 모르키여"


듣는 둥 마는 둥 한 20분여 운전을 하고 좁은 농로로 들어서니 길 양옆에 몇 대의 차량들이 보인다. 지금 이 시간에 8시도 채 안된 시간이다. 고사리가 있음 직한 임야지대에는 모두 차가 서있다. 아슬아슬한 농로길을 따라 올라가서 작년에 왔던 곳에 들어섰다. 이미 입구에는 승용차 한 대가 주차해 있었고 저 멀리 고사리 꺾은 아줌마가 보였다.


"어. 사람이 있는데. 벌써 한참인 모양인디"

우리만의 보물창고를 들켜버렸다는 아쉬움을 가득 담은 채 나는 차를 세웠다.


" 잘 찾아보게.. 우리 거는 이실 거야" 누나는 아쉬움이 잔뜩 묻은 어투로 작업 개시명령을 했다.


나는 드렁크를 열고 작업화로 갈아 신고 가시덤불과 잡초가 무성한 곳으로 들어섰다. 가시덤불 임야지대라 하지만 이미 숫하게 많은 사람이 다녀간 듯한 길은 탄탄대로 였다. 장갑을 끼고 전투태세 모드로 진입을 했으나 고사리는 온 데 간데없다. 꺾을 게 있어야 허리를 굽히는데 허리를 굽힐 필요가 없어졌다.

작년에는 허리를 펼 시간이 없었다. 그냥 않아서 오리걸음 자세로 가면서 꺾으면 금세 한 줌이 됐다. 바구니에 담기가 바빴던 것 같다. 손바닥 길이만금 길고, 줄기가 굵은 실한 고사리들이 "왜 이제야 오세요"라는 듯 반겨주었던 기억이다.

[작년 고사리 꺽기 수확량]                                                


"야.. 이런 진짜 없는데" 그냥 고요 속에 외치는 푸념을 했다.

고사리 줄기가 보여 언 듯 얼굴을 숙여보면 방금 누가 꺾어간 듯 잘린 자리에 물기가 촉촉하다.


"이런" 갑자기 화가 난다. 내가 주인이 아닌데도 말이다. 먼저 꺾는 사람이 주인인데...

한 30여분을 열심히 뒤졌나...

아쉬움이 잔뜩 묻은 채 자꾸 허리를 구부리는 것 같은 누나 곁으로 갔다.

선수는 다르다. 나보다는 훨씬 수확량이 많았다.


" 잘 뒤져봐. 풀들 사이에 놈들이 꺾어다 만 거.. 몇 개씩은 보여"

아내는 저 멀리 평지를 누비며 꺽는중이다. 제법 뭐가 보이는 듯 허리를 굽은 모습이 자주 보인다.


쉴 겸, 물 한잔 마시면서 정보를 교환했다.

얼마나 꺾었는지 중간결산도 했다. 역시나 내 바구니가 제일 가볍다.


" 어, 다들 꽤 했는데" 먼저 선수를 쳤다.

" 갔다 온 사람들이 직년보다는 고사리가 없던 핸게, 맞는 말인 것 같다"  진짜 작년 하고는 다르네.

" 올해는 생고사리 값도 작년보다 하영 비싸덴.."

[ 오일장 햇고사리 좌판 ]


우리가 잠시 쉬는 사이에도 차들이 계속 들어온다.


"조그만 더해보자. 아직 시간도 이르니..."

누나의 독려를 받으면서 우리는 다시 고사리꺾기 모드로 진입을 했다.


1시간 반정도 했을까...

슬슬 햇빛도 나고, 좁은 면적에 사람들이 많기도 하니 눈치도 보였다.

선입선출이라 우리가 먼저 접기로 했다.


"조금 내려가면 대나무가 있는 밭에 가서 조금만 더 꺾고 가자"

아쉬운 모습으로, 마치 누나가 맡겨둔 고사리밭이 있는 듯 추가작업을 제안한다.  


5분여 내려온 길, 새로 들른 장소도 고사리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작업개시 2시간 정도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을 했다.

제주에서는 고사리 잎 부분을 손이라고 한다.
고사리를 꺾으면 일단 손을 비벼서 털어낸다.
먹지 못하는 건 아닌데 전통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


누나집에서 삶고 말려야 한다. 도착해서 바구니를 모두 풀었다.

꺾은 고사리를 전부 모아보니 꽤 양이 됐다. 섭섭하지 않을 정도였다. 오늘 목표량은 간신히 채운 듯하다.

            [올해 고사리 꺽기 수확량]


손을 비벼서 털어내고, 큰 솥에 2번에 나누어서 삶았다.

그리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초석을 깔고 말리기 위해서 펼쳤다.

고사리는 꺾는 것 만치 삶고 말리는 게 중요하다.

너무 삶아서 물러져 버리는 경우도 있고, 덜 말려서 오래 보관하는데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든 시설과 기술을 가진 누나가 있다. 거침없이 해결했다. 고사리 전문가급이다.  

햇빛이 참 좋다.. 고사리가 잘 마를 것만 같다.



" 올해 아버지 제사상에 올릴 고사리는 준비 다 했져" 누나의 외침이다.

ㅋㅋ 아버지는 고사리를 안 좋아하는데...


올해 첫 봄나들이 고사리꺾기는 여기 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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