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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Apr 29. 2023

자연림 숲터널이 아름다운 드라이브 길..

5.16 도로 숲길 드라이브를 하고 나서

서귀포 가는 길, 오랜만에 5.16 도로를 달렸다.

도로의 공식명칭은 1131번 국도, 원래 이름은 횡단도로다. 또 하나의 횡단도로인 1100 도로가 생기면서 제1횡단도로라고도 불린다. 제주시와 서귀포를 연결하는 도로중 가장 먼저 생긴 도로라는 의미다.


5.16 도로라는 명칭은 5.16 군사 쿠데타 후 최초로 포장공사를 한 도로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도로의 포장공사에 군사정부의 국토건설단이 참여를 해서 작업을 했기에 5.16 도로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하나 당시 관계자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국토건설단이 참여를 한건 1100 도로 건설 현장이라고 한다. 예전 도로 곳곳에는 5.16 도로라는 기념비들이 있었으나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면서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5.16 도로에 대한 이름을 사용하지 말자는 주장도 있다.


5.16 도로의 한라산 구간은 녹음이 우거진 숲터널로 드라이브하기에는 지금이 최적이다. 시내를 벗어나서 본격적인 한라산 허리에 진입하면 짙은 녹음구간이 펼쳐진다. 회색빛 아스팔트길에서 짙은 녹색의 녹음을 뚫고 툭툭 나타나는 파란 하늘을 보면서 달릴 수 있다. 비슷한 도로를 달리는 느낌이나 이상하게 지루하지가 않다.  길가의 수목은 자연림이다. 크고 작은 자연림 나무들이라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꽉 찬 느낌이다. 오밀조밀하다. 그런 모습이 도로를 달리는 사람들에게 더 친근감을 준다.  


5.16 도로는 한라선의 7부 능선을 따라서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연결하는 11리 길, 약 44km 구간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길이라 한다. 아마 산등성이를 넘어서 서귀포와 제주시를 오가는 상인이나 관리들이 다니던 길인 듯 싶다. (1911년 발행된 "남선보굴제주도"에 제주성내와 서귀포를 가는 통로라고 나옴) 그 후 여러 가지 용도로 개발, 사용되다가, 1963년 5.16 정부가 "횡단도로포장공사"라는 명칭으로 도로정비를 하고 아스팔트 포장을 함으로써 지금의 도로가 된 것이다.


5.16 도로는 아리랑 고개다. 그러기에 교통사고가 적다(?)


길은 걸어서 높은 한라산을 넘어가야 하기에 부담을 덜기 위해서 산허리를 빙글빙글 돌면서 올라가게 만들어져 있다. 아리랑 고개다. 급커브가 많다. 어떤 곳은 커브 각도가 100도를 넘는다. 여기서는 원심력으로 자동차가 차선밖으로 밀린다. 조금만 방심하면 반대 차선의 차와 충돌한다. 이런 구간에서 오르막 내리막의 경사길을 만나면 무심코 조상님을 찾게 된다. 도로는 처음 1차선이었으나 급커브로 인한 교통사고가 빈번해서 1970년대 2차선으로 확장공사를 했다고 한다.  


제주시에서 출발을 하면 성판악까지는 오르막길이고, 그다음 서귀포까지는 내리막 길이다. 경사도가 높지 않은 길, 서서히 오르고 내리는 길이다. 큰 위험 부담은 없다.


5.16 도로는 길의 특성으로 모르는 초행길 운전자에게는 위험하다. 그러나 주변경관이 좋고, 특히 한라산 정상 등반이 가능한 성판악코스를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제주를 처음 찾는 초행길 운전자도 많이 찾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교통사고가 우려와 같이 많지는 않다. 아마도 도로 전체가 급커브가 많아서 과속을 할 수가 없고, 조심조심 안전 운전을 한 결과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래도 가끔은 도로의 사정을 모르는 초행길 렌터카가 사고를 내기도 하고, 눈이 많이 오는 날 눈길에 미끄러지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5.16 도로는 대학시절 내 통학길이었다.
군데군데 추억이 서려 있기도 하다.


5.16 도로는 내 대학시절의 많은 추억이 녹아 있는 길이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통학길이었다. 당시 5.16 도로는 한일여객만이 운행을 하고 있었다. 서귀포 터미널에서 한일여객 마이크로버스를 타면 산천단 조금 지난 제주대학교 입구까지 직행이다. 한 40~50여분 소요된다. 제주시내를 경유할 필요가 없는 최단시간 노선이기에 시간이나 비용면에서 최적이다. 그래서 통학을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버스 안에서 늘 만나는 학생들끼리는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종착지에 내려서는 막걸리나 차도 한잔하고 서로 동료가 되기도 했다.



제주는 날씨가 무척 다양하기에..

제주도가 좁긴 하지만 한라산과 섬의 특성상 날씨가 무척 다양하다. 같은 날인데도 서귀포와 제주시의 날씨가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비가 오기에 우산을 챙기고 버스를 탔는데, 막상 학교 앞에 내릴 때 햇빛이 쨍쨍 인 경우가 종종 있다. 

우산을 들고 학교를 가면 좀 이상한 학생이 된다. 귀찮기도 하고 눈총을 받는 것도 싫다. 다행히 당시 5.16 도로 버스를 내리는 버스정류장인 학교입구에는 학교에서 만든 커다란 정원이 있었다. 우산을 집에 갈 때 가지고 갈 생각으로 일단 정원의 꽃들 사이에 숨겨 놓고 학교로 간다. 그런 날은 이상하게도 과친구들과 소주 한잔을 할 일이 생긴다. 학교정문에서 버스를 타면 제주시내까지 직행이라서 학교 입구에 아침에 숨겨놓은 우산을 챙겨 갈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사실 그다음 날이 언제가 될는지는 모른다. 비가 와야 우산을 가져갈 수 있기에 말이다.


어느 날 서귀포에서 출발할 때 비가 안 와서 우산 없이 학교에 왔는데, 버스를 내리자마자 비 오는 날이 있다.

이런 날 누가 꽃들 사이에 숨겨 놓은 우산을 내가 찾는 다면 진짜 운수 좋은 날이다. 나는 습관적으로 정원의 꽃들 사이를 뒤져 본다. 뜻하지 않게 우산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쾌재를 부른다.

"내가 이럴 줄 알고 우산을 여기다 맡겨 뒸지.."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어떤 날은 내가 숨겨둔 우산하고 좀 다른 경우도 있다. 그래도 우산이다.

 

제주시내의 야경을 볼 수 있는 행운

오후 늦게까지 강의가 있는 날이나 공부를 한다고 도서관에 있다가 늦게 귀가하는 날이 있다. 학교 앞 정류장이 중간 정류장이고 좌석도 몇 안 되는 마이크로버스라 보통은 빈좌석이 없다. 직장인들의 퇴근시간 이후면 더욱 그렇다. 할 수 없이 서귀포까지 40여분을 서서 가야 한다. 다음 버스를 기다려도 마찬가지 이기 때문에 차리리 가는 게 낫다. 좁은 버스 안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서서 가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도 얼굴이 익숙한 동료들이 있기에 왁자지껄 떠들면서 가기에 지루하지는 않다.

한 10분여를 달리면 삼의악오름 앞동산, 즉 지금의 제주의료원 뒤편길에 다다르게 된다. 고도가 높은 도로이고 당시에는 길가에 가로수가 없었기에  제주시내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밤 8~9시경 제주시내는 거의 점등이 된 상태라 볼만하다.  


" 야, 제주시내 야경이네.. 멋있다. 저거 칼호텔.."


서서 가는 피로, 오늘 하루의 피곤함이 싹 풀리는 순간이다. 제주시내에서 가장 높은 칼호텔이 우뚝 솟아있다. 개관한 지 얼마안된 21층 호텔, 한강 이남에서 최고 높은 건물이라 당시 모든 도민들의 관심대상이었다. 언제 한번 꼭대기층 스카이라운지에 가보려나..  


돈을 내야 다닐 수 있었던 길

제주에 유료도로는 없다. 5.16 도로는 국도지만 처음에는 통행료를 받았다. 톨게이트는 견월악 앞 길가운데에 있었다. 1972년부터 1982년까지 요금을 내야 다닐 수 있었다. 국도에서 요금을 징수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건설부의 의견으로 1982년 말 폐지됐다. 내가 통학하던 중간에 톨게이트가 문을 닫고, 건물은 그대로 둔 채 요금을 안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톨게이트 건물도 없어지고 그 옆에 빈 공간만 있다.  


2023년 4월의 5.16 도로는 어떤 맛일까?


제주시에서 서귀포를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주로 출발점과 도착점의 위치에 따라서 노선을 택하면 된다. 오늘은 제주시 출발점이 5.16 도로와 가까운 제주대학교 병원이다.

 

시내를 벗어나 제주대학교와 국제대학교를 넘어서니 바로 숲길이다. 길가 가시덤불 속에서 자란 자연림들은 무성함이 넘쳐 지나가는 나그네의 머리까지 덮어주고 있다. 좌우 녹음의 숲을 헤치고 파란 하늘을 보면서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는 목적지를 향해서 달리는 기분도 괜찮기는 하다. 인공이 만들어 놓은 숲터널하고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아기자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 편안함이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골프장과 한라생태숲 앞을 지나서니, 영주 10경의 하나인 고수목마를 볼 수 있는 제주마방목지가 나온다. 한가로이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트래킹 코스로 유명한 사려니 숲길로 가는 길도 5.16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표지판이 있다.


등반코스로 유명한 성판악코스는 백록담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코스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코스다. 특히 겨울철에는 눈 쌓인 백록담을 보려는 등반객들이 연일 북새통이다. 주차장은 등반객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성판악 주위 동서로 1KM 구간 길가가 노면주차장으로 변할 때도 있었다.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사고의 위험성이 높아지자 길가에 주차를 못하도록 안전봉을 설치했다.

현재 한라산 백록담 등반은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정상을 갈 수 있는 성판악코스, 관음사 코스를 이용하는 경우는 미리 예약을 하지 않고서는 코스입장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오늘 성판악 주차장은 여유롭다.


성판악을 지나 서귀포 방향으로 조금 가면 5.16 도로의 명물 숲터널이 나온다. 고불고불한 길에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길가를 완전히 나무숲이 덮어 버렸다. 도로가 왕복 2차선으로 여유가 없다. 단지 차를 운전해서 지나갈 뿐 내려서 사진을 촬영하거나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아쉬움이 있는 곳이다. 그런 아쉬움이 있기에 더욱 그립고 아름다운 곳인지도 모른다.


여기를 지나면 본격적인 아리랑길이다. 커브길, 내리막길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주위에 나무들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고불고불한 길이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리랑 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내가 통학하던 시절만 해도 지금 같이 수풀이 우거지지 않은 때라 아리랑 고개 모습이 보였다. 내리막길 운전이라 조금은 여유가 있지만 이 길을 올라오는 운전은 더욱 어렵다. 내가 처음 운전을 할 때 스틱인 변속기차를 타던 시절 변속하랴, 동산 오르랴 무척이나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2단 이상을 변속한 기억이 없다. 그래도 지금은 오토 변속기라 힘을 주어 달린다.

초창기 수목이 없을 때.. 아리랑 고객 모습이 보인다/출처 : 제주건설사


이제 낯익은 서귀포에 다다른다. 오늘 날씨는 제주시와 같아서 우산이 필요 없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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