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문화를 느끼면서 걸어보는 길

동네 올레길 17코스(도평구간)

by 노고록

집을 나가면 언제든지 바다와 하천, 숲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언제든지 자연속을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어서 좋다.
그래서 난 우리 동네를 좋아한다.


내가 몸이 찌뿌둥하거나, 바람을 쇠고 싶을때 걷기 운동을 하는 4~5개의 나만의 코스가 있다. 그날그날의 날씨와 걷기를 시작하는 시간에 따라서 달리 선택한다.


오랜만에 올레길 17코스를 따라 걸었다. 저녁에는 일정이 있는 관계로 아침 시간을 택했다. 봄이라 가고 오는 길에 새롭게 자리 잡고 있을 이름 모를 꽃들과 봄 들판의 향기를 맡고 싶기도 했다.


올레길은 농로를 포장한 곳으로 입구를 들어서면 벌써 농촌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울퉁불퉁 좁은 농로길 좌우에 비닐하우스와 밭들이 있다. 조금 가면 올레길을 표시하는 리본이 여기가 올레길임을 알려준다. 봄날 제주를 대표하는 유채꽃은 여기저기 장소를 가리지 않고 틈만 있으면 피어있다.


올레길에서 보이는 것들,
자주 보는 모습이지만 일일우일신이다.
항상 새롭다


길은 전형적인 농로길이다. 경운기 한대, 우마차 한대가 지나면 됨직한 좁은 길이다. 사람들의 이동이 많아지면서 시멘트 포장을 했다. 농로 좌우에는 예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밭담이며 예전 과수원의 방풍림이었던 숙대낭(* 제주어 : 삼나무)과 밭 가장자리 물이 흐르는 도랑과 대나무 숲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예전 바람 많은 제주에서 과수원의 방풍림은 숙대낭이다. 과수원 경계마다 숙대낭을 심어서 바람으로부터 귤나무를 보호했다. 그러나 숙대낭이 너무 자라다 보니 햇빛을 가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감귤이 익는데 햇빛은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에는 숙대낭을 중간 허리에서 절단해 버리던지, 아니면 숙대낭을 완전히 제거하고 방풍이 가능한 가림막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왼쪽 과수원의 숙대낭은 그대로이고, 오른쪽 과수원은 숙대낭을 중간에서 절단한 모습이다.

제주의 밭담은 밭을 일구면서 나오는 돌을 주로 사용한다. 모양도 제각각, 크기도 제각각 이어서 아무리 조각을 잘 맞추더라도 틈새가 날 수밖에 없다. 여기는 바람구멍이다. 아무리 강한 바람도 바람구멍을 타고 지나가기에 제주의 돌담은 무너지지 않고 그 생명력을 길게 가져간다.

하천변의 돌담은 다르다. 밭에서 나오는 돌과 하천에서 가져온 몽돌을 반반 섞어서 돌담을 쌓는다. 하천에서 나오는 돌은 밭에서 나오는 돌보다 크고 단단하다. 반면 돌 자체가 매끄러워서 면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둘을 잘 어울려서 맞추면서 돌담을 쌓았다. 지혜가 필요한 일이다.

몽돌과 밭돌들이 섞여서 쌓아놓은 밭담, 오랜 세월이 지나서인지 구분이 안되고 든든하게 보인다.


올레길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무수천은 한라산 백록담에서 발원한 물이 바다까지 흐르는 제주 하천 3개 중의 하나다. 비밀의 정원 같은 곳으로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깊은 매력이 있는 곳이다. 하천 곳곳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바위들이 있다. 중간중간에는 물웅덩이인 소(昭)들이 있어서 동네주민들이 여름철 목욕을 즐기던 추억과 문화들이 녹아 있다. 엊그제 큰비가 온지라 하천 곳곳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얼마 전부터 무수천의 가치를 관광자원화 하기 위한 사업들이 회자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잠잠한 편이다. 보존, 복원이라는 개발을 위한 명분보다는 지금 그대로 놔두는 게 제일 좋은 보존이 아닌가 한다. 이미 하류 부분은 범람방지라든지 인근 농지보호, 생태하천보존이라는 명목으로 여러 차례 거액을 투자했는데 아무런 효과를 못하고 매년 유지보수 비용만 낭비하고 있다.

깍아 지른듯한 바위가 하천의 깊이를 얘기해 준다


하천은 얼마나 깊은지 천연요새 동굴도 있다. 지나가다 험상궂은 날씨를 만나면 몇 시간 쉬어가도 됨직한 동굴이다. 하천에서 놀이를 즐기던 사람들이 햇빛을 가리고 쉬어가는 장소로 이용했을 직하다. 4.3으로 살 곳을 찾아서 피해 다니던 시절, 마을사람들은 산과 오름, 하천의 동굴과 움막에서 숨고 살았다고 한다. 그 시절이 문득 생각나는 길목이다.

하천변에 자리잡고 있는 동굴들


산담으로 둘러싸인 제주의 전형적인 산소도 보인다. 제주는 16~17세기부터 사람이 죽으면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밭의 제일 윗편 모퉁이에 매장했다. 그리고 묘소의 경계를 표시하고 주위의 우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산담을 쌓았다. 산담에 사용하는 돌 역시 인근 밭이나 주위에서 모은 것을 사용했기에 작고, 비툴비툴 했다. 대신 산담의 폭을 넓게 해서 무너짐을 방지하고 사람들이 걸 수 있게 만들었다.

산담 안에는 산소가 하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부인 경우는 합묘를 하는 경우도 많다. 드물게는 가끔 산소가 2개 이상인 경우도 있다. 가문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다. 구체적인 얘기는 들어 봐야 한다.

산담안에 3개의 묘소가 있는 아주 특이한 경우다

올레길 밭 모퉁이에 있는 산소다. 산담 안에 3개의 묘소가 있다. 드문 경우다. 산담은 제주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주위 돌들을 모아서 형편껏 쌓았다. 산담 한 모퉁이는 큰 바위가 있어서 제대로 모양을 만들어서 쌓지를 못했다. 3개의 묘소는 크기나 각각의 위치를 달리하고 있다. 보통은 묘소 위치를 잡을 때 가장 선조가 윗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때문에 이 묘소는 각각의 대수를 달리하는 사람들의 묘소라고 추정이 된다.


제주에서는 집이나 밭 입구를 정낭을 설치했다. 주인이 있고 없음을 표시하는 일종의 안내판이지 보호장치는 아니다. 정낭은 가볍게 넘을 수 있는 구조물이다. 그러나 정낭을 뛰어 넘어서 주인이 없는 집이나 밭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 제주사람들의 불문율이다.

최근에는 정낭보다는 대문을 설치하고 자물쇠로 잠근다. 마을이 개방되고 타지인들의 출입이 많아지면서 종종 생각지도 못했던 도난 사고들이 많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농산물 도난 사고도 많이 발생한다. 마을 곳곳에는 CCTV가 설치되 있기도 하다.

정낭의 다른 모습들


보리밭 입구에는 돌담사이 긴 나무막대를 정낭으로 걸어놨다. 비교적 예전 정낭의 모습이다. 보리밭에 들어오지 말라는 주인장의 의사표시다.

내려오는 길 마을 어귀에서 본 감귤 과수원의 정낭 모습이다. 쇠파이프를 세우고, 쇠줄 2가닥을 걸어놨다. 마찬가지 출입금지라는 주인장의 뜻이다. 조금 더 내려오는 길 잘 만들어진 입구와 철제대문에 CCTV와 경고등까지 있는 과수원도 있다.


지금 제주에는, 경관이 좋고 조용한 곳이면 어김없이 마을의 분위기가 어색한 건물들이 생겨난다. 전원주택, 타운하우스, 세컨하우스라고도 한다. 그들만의 개념이고 주장이다. 올레길에도 개발의 모습은 여전하다.

올레길 하천을 따라 들어선 문명의 이기들


이런 저런 잡 생각속에 제1사라교까지 왔다.

내가 가장 짧게 걷는 반환점이다. 여기까지 왕복하면 5KM다. 걸음으로는 7,000보 내외가 된다.

가면서 보는 길과 오면서 보는 길은 전혀 다른 길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와 교감하고 느끼면서 걸어보는 것도 세상을 아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오랫만에 걸어보는 길, 봄이 오는 길이어서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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