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민속오일장에는 "할머니 장터"라는 일정한 구역이 있다. 이곳을 제주어로 할망장이라고 부른다.
지붕만 있고, 둘레가 개방된 수십 개의 점포가 2-3평 규모로 획정되어서 나란히 붙어있다. 전업농이나 전문 상인이 아닌 농촌의 부업농을 위한 곳이다. 소농이나 우영밭 농사를 하는 할머니들이 재배한 농산물을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도에서 특별히 배려해서 만들어준 공간이다. 여기 판매자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동네 어르신들이다. 대부분 할망이고 동네 여자 삼촌들이다. 그래서 할망장이라고 부른다.
농산물은 없는 것이 없다. 밭에서 재배가 가능한 것이라면 모두 있다. 소량 다품종 판매를 하는 곳이어서 1,000원어치 또는 1~2개라도 원하는 개수만큼 구입도 가능하다. 그러니 젊은 부부나 소량 구입을 원하는 사람들이 눈치 안 보고 얼마든지 구입이 가능한 곳이다. 직접 본인이 먹으려고 소량으로 파종했는데 남아서 판매를 하러 나온 동네 삼춘도 있고, 우영팟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팔아서 손자, 손녀들의 용돈주려고 나온 할망도 있다.
제주 민속오일장 할망장에서 흥정하기는 만만치 않다..
일단 외국어를 알아야 한다
아는 사람만 아는 팁이다. 집에서 소량으로 재배하므로 농약을 사용할 환경이 안 된다. 결과적으로 친환경이나 저농약재배 농산물이다. 반면 포장이 안 되거나 상태가 고르지 못해서 못생겼다. 외형이나 모양을 중시 여기는 사람들은 선뜻 나서서 구입하기가 꺼려지는 경우도 있다. 전체적으로는 시골 동네 장터, 버스 터미널 좌판 장터를 생각하면 된다. 단, 할망장에서 흥정하려면 외국어를 알아야 한다. 아주 토종 제주어 말이다.
할망장에서 흥정하다가 그냥 가기란 쉽지 않다. 동네 어른에게 모진 짓을 하고 떠나는 기분이라 찝찝하다. 흥정을 하면 1개를 사던 1,000원어치를 사던지 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러기에 여기서 만큼은 아이쇼핑이 먼저다. 쭈욱 둘러보면서 어디서 살 건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할망들도 요새 담합을 하는지 가격은 거의 비슷하다. 보통 조그만 소쿠리(바구니)에 농산물을 담아서 전시 하는데 대충 2,000원~5,000원 수준이다. 대파나 쪽파 등의 묶음 단위도 비슷하다. 단지 선택할 부분은 품질인 것 같다. 내가 원하는 크기와 모양을 가졌는지, 싱싱한지 등이다.
할망들도 이제는 장사하는 요령이 좀 늘었다. 전시해 놓은 물건이나, 묶음의 보이는 부분에는 양호한데 막상 물건을 펼쳐놓고 보면 문제가 있는 경우가 가끔은 있다. 이 경우는 고민이 된다. 할망장에서 일단 흥정이 들어가면 많은 것을 들어보고 조건을 따질 수가 없다. 대충 품목만 맞고, 가격만 맞으면 사야 하는 상황이 돼버린다. 그게 할망장이다.
얼마전 씨감자 구입도 조급한 마음에 흥정을 들어갔던 게 실수였다.
바구니 단위보다는 조금 많이 구입할 계획이라 박스로 판매하는 좌판 앞에 멈춰 섰다. 가격과 양을 물어보니 반 box 정도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box를 뜯고 보니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상태가 아주 달랐다.
" 아니, 이건 씨감자로 사용하기에는 상태가 안 좋은디. "
" 아니라, 이거 그냥 밭에 댁경 내불어도 잘만 커, 걱정 맙써“
(* 제주어 해석 : 아닙니다. 그냥 밭에 던져서 내버려도 잘만 큽니다. 걱정 마세요)
이게 끝이다. 그대로 포장을 한다. 그리고는 쭈욱 내민다.
대금을 치르고 돌아서면서도 우리 부부는 서로 얼굴을 보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원하던 결과가 아니었다.
요즘은 할망장에서도 전문가의 냄새가 풍기는 할망들도 있다.
아니 할망보다는 좀 젊은 사람들 같은데 여기에서 판매를 한다. 아마 가족중에 조건이 되는 분하고 같이 장사를 하는 경우인 것 같다. 그래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예전 시골의 공터나 버스정류장에서 봄직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다. 할망장에는 사람도 많고, 물건도 많고, 먹을거리도 많다. 그래서 여기 오면 내가 풍요로워진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