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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May 04. 2023

식탁 위에 젓가락이 3개..

오늘은 무척이나 비가 많이 내린다. 폭우 수준이다.

어제 봄작물을 심은 농부들에게는 최상의 선물이다.

하루는 햇빛이 쨍쨍, 하루는 비, 하루는 강풍이다. 날씨가 제멋대로다.

요새는 날씨가 조금만 거칠면 제주공항의 상태가 걱정이 된다.


오늘은 더 걱정이 되는 이유가 있다.

우리 동그라미 가족의 넘버 3인 큰딸이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그립다고 귀향하는 날이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1년에 두어 번은 뜬금없이 노트북을 들고 나타난다.

연휴가 있는 날, 앞뒤로 휴가를 받고 재택근무까지 허가를 받아서 1주일을 거뜬히 챙기고 온다.


사실 큰애는 일찍 부모품을 떠나서 객지생활을 했다.

17살 때 어린 나이에 고등학교를 서울로 진학을 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고향얘기를 많이 한다.

우리 부부도 그런 이유를 알기에 큰애가 집얘기를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고 미안해하는 것은 사실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 단톡에 비행기 일정을 딱 올려놓았다.

어린이날이 금요일이어서 토, 일요일 연휴가 끼었다. 마침 다음 주 월요일은 어버이날이다.

휴가를 받으면 어버이날 같이 보낼 수 있다고 내심 작정을 하고 내려오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둘만 사는 집, 가끔은 썰렁함을 느끼는데 이보다 더한 선물이 어디 있겠나.

그저 고마울 뿐이다.



아내는 오랜만에 내려오는 딸에게 무엇을 해줄지 먹을 것 걱정이 우선이다. 사실 큰애는 식성이 좀 까다롭다.


"애들 먹을걸 준비해야 하는데, 뭘 해 주지..?"

"글쎄, 와서 얘기해서 하는 게 좋지 않나.." 애들이 올 때면 우리 부부가 하는 말이다.


멀쩡한 이부자리를 며칠 전부터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화장실 대청소를 한답시고 난리다. 애들이 내려온다면 항상 집안을 뒤집어 놓는 게 아내의 일상이다. 혹시 집에 왔다 가면서 뒤탈이 나지 않을까 하는 엄마의 마음인 것 같다.


요즘애들의 식성이나 먹거리는 우리의 생각하고는 많이 다르다.

이런 생활이 몇 해 전부터 시작된 일이라, 아내는 애들이 집에 온다면 이런저런 음식을 많이 준비했었다.

그러나 몇 가지 음식을 빼고는 애들의 변하는 식성을 맞추지를 못했다. 가고 나면 남는다.


애들은 엄마가 자기네들이 왔다고, 맛있는 음식을 해준다고 주방에서 애쓰는 것을 싫어한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왔는데, 엄마를 고생시키면 되냐고..  

외식하자고, 배달시켜 먹으면서 그동안 살아가는 얘기나 하고 싶다 한다. 그래서 집에 올 때마다 동네에 새로 생긴 맛집리스트를 만들고 온다. 그동안 먹은 음식들의 이름도 알지를 못할 정도다.




오늘은 퇴근하고 내려오는 길이라 비행기 시간이 늦다.

그런데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강도를 더하더니 저녁이 넘자 폭우 수준이다.

폭우에 어둠이 짙게 깔리면서 차선이 안 보일 정도다. 운전하기에는 제일 위험하고, 피하고 싶은 날이다.

아내를 중간에서 픽업하고 같이 공항으로 향했다.

요즘 제주공항은 난리다. 바야흐로 5월 가정의 달, 여행의 달이 아닌가?

공항입구는 지하도 공사를 한답시고 몇 년째 난리부르스다. 눈치가 있으면 벌써 완공이 됐을 텐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밍거적 거리는 것만 같다.


제주공항에 출, 도착 비행기는 시간표를 잊은 지 오래다.

정시에 오는 일이 없다. 오늘은 서울에서 출발부터 10분 지연이라고 한다. 수시도착이다.

대학입시에서 수시가 주류를 이루면서 갖가지 문제를 만들더니만, 항공사도 따라 하는가?

수시는 다분히 자의적이다.


공항에서의 마중은 정시에 온다고 해도 기다려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지연이 되니 오죽 기다려지겠는가? 기다리는 사람들의 뇌리에 콱 박힐 수밖에 없다.


공항에서는 우리만의 픽업룰이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공항 1층 4번 게이트에서 픽업을 한다.

잠시 정차를 하고 픽업을 하기 때문에 애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차에 태우고, 문을 닫고 출발하는 게 우선이다. 집에 와야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애들은 가끔씩 아빠가 화난 줄 안다고 한다.



반가운 사람을 태우고 집으로 달리는 길, 폭우는 계속 내린다.

오랜만에 고향에 와서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듯하나 창밖이 왁왁이다.


"저녁에 내려와서 시간도 늦는데 뭐 먹을래?"

"김치전이요.."  큰애의 엄마 최애 음식은 김치전이다.

엄마는 카톡을 받고 미리 준비해 둔 김치전 반죽을 프라이팬에 풀었다.


큰애는 나를 닮았는지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냉장고에 맥주도 없어요?" 한참 냉장고 구석구석을 뒤지더니 하는 말이다.

"응, 요새는 아바도 맥주를 안 마셔, 그래서 안 사다 놨는데.."


"아빠, 이거 마셔도 돼요?" 냉장고 옆 장식장에 오래전 고이 넣어둔 양주병을 꺼내면서 하는 말이다.

"왜, 요새는 그런 거 마시나?"

"네, 사람을 만날 일이 많아서, 사람들 만나면서 조금씩 배워가는 중.."

"짠, 건배.."


오랜만에 식탁에는 3개의 젓가락이 올라왔다.

3인 3색의 살아가는 얘기를 풀어보는 시간이다. 그래서 가족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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