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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May 08. 2023

폭우는 우영팟을 풍성하게 했다

식물은 물과 햇빛만 있으면 잘 자란다

연 3일간 폭우와 강풍이 제주에 물폭탄을 때렸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봄날에는 익숙지 않은 날씨다.  


오늘 아침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쾌청에 많음이다.

난 아침에 일어나면 발코니에서 아스팔트길을 내려  보면서 비가 오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아스팔트길 회색빛이 제대로 보일 정도로 말라 있으면 비가 안 온 거다.


비는 농작물이 살아서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는 생명수다.

생명수가 농부의 노력이나 비용 없이 하늘에서 주르륵주르륵 내려준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러기에 비가 오는 날이면 농부는 바쁘다. 비옷을 입고 밭에 나가 물길을 관리해주어야 한다. 내리는 빗물이 고이면서 작물이 침수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생명수인 물길이 작물에 골고루 닿도록 하기 위해서다. 며칠간의 비는 갓 심어진 봄작물에 충분한 수분을 공급해 주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다.  



발코니를 때리던 빗소리마저 조용한 아침, 밖을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살이 비친다.

비가 개인걸 보니 유심재의 우영팟이 걱정된다.

유심재에는 올해 봄작물 정식을 마치고, 터널작업까지 완료한 상태다.

이제 자연의 기운을 받으면서 별 탈 없이 잘 자라주기만 하면 된다.

우영팟은 물 빠짐이 좋은 토양이라 폭우는 걱정이 없다.

다만 사방이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강풍이 불면 바람이 밖으로 나가지를 못하고 안에서 빙빙 도는 것이 걱정이 된다.      


유심재 입구에는 간밤의 전투의 잔해가 흥건하다.

입구 팽나무가 얼마나 흔들렸는지 나뭇잎과 가지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올레길 어귀 삼춘이 무심히 빗자루질을 하고 있다.

올레길 잔디 위에도 담벼락을 타고 넘어온 옆집 장미꽃과 개복숭아 나뭇잎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길 양옆의 사랑초는 폭격을 맞은 듯 나부작이 엎드려있다. 간밤의 바람의 세기를 짐작하고도 남을 듯하다.

 

비를 흠뻑 맞은 식물들은 생기를 찾고 훌쩍 자라 버린다.

"물 하고 햇빛만 있으면 식물들은 무심하게 잘 자란다"는 말을 실감하게 해 준다.



"칸나가 필 때가 됐는데.." 며칠 전 칸나옆을 지나면서 중얼거리던 아내의 말이 생각난다.

아내의 재촉에 화답하듯 비를 한껏 받아먹은 칸나가 오늘은 집 모퉁이에서 활짝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유심재 마당에서 가장 늦은 꽃은 영산홍이다.

철쭉도 담고, 진달래도 닮은 꽃, 아직도 정확한 정체는 모른다. 영산홍이 붉으스레 하게 피기 시작했다.

엊그제 폭우가 모두를 슬프게 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자연현상을 나름대로의 쓰임이 있다.




휘이 둘러본 우영팟은 안녕하다.

걱정했던 터널도 무사하고, 화단 항아리 위에 얹어있는 크고 작은 화분이랑, 부표도 그대로다.

생명수를 흠뻑 먹은 식물들은 밤새 뭔 일이 있었냐는 듯이 훌쩍 자란 모습이다.


물만 주면 얼마든지 죽죽 자라주는 작물들이 있다.

며칠 전 심은 상추와 아삭이가 손바닥을 덮을 만큼 훌쩍 자랐다. 쌈을 싸 먹을 정도로 자랐다는 것이다.

우리 우영팟의 터줏대감인 부추도 부추전을 해먹을 정도로 자랐다.   


"부추가 많이 자랐는데, 좀 자르고 갈까요" 부추는 제때 수확을 해주어야 한다.

유심재 오는 길 큰애가 내려준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카톡에 글을 썼다.

" 부추 좋아요"  이내 답변이 올라왔다.

부추는 수확보다는  다듬어서 먹을 수 있게 준비하는 게 귀찮고 시간이 많이 든다.

"해?  말어? "  몇 초간의 망설임이다.

일단 답변을 받았으니 안 해갈 수는 없고 하자니 마무리까지 노력이 좀 필요하다.


부추밭 한구석에서 잘 자란 놈으로 부추를 몇 움큼 베어냈다. 부추전을 한번 해먹을 정도의 양은 되어야 다. 이제 다듬는 게 일이다. 마당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내리쬐는 햇빛을 등뒤로 맞으면서 한참을 다듬었다.

 

이젠 유심재에 온 목표를 달성했으니 다시 한 바퀴 둘러보고 가야겠다.

자세히 보니 터널 속의 토마토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토마토가 자라서 터널 높이에 닿은 거다.

터널에 구멍을 뚫고 토마토를 세상밖으로 끄집어냈다.

창고에서 긴 지주대를 가져다가 땅에 박고 토마토를 고정시켰다.

토마토는 꽤 높이 크는 작물이라 첫 지주대가 중요하다. 순치기도 중요하다. 손이 제법 많이 간다.


안개비가 하나둘 떨어진다. 오늘은 이 정도다.


이제 막 자란 추는 후일의 현장감 있는 식사를 위해서 그대로 나눠야겠다.

잠시 집에 들른 큰애가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유심재에서 삼겹살 파티를 할 예정이다.

물론 날씨가 도와줘야 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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