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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Oct 27. 2022

죽음을 맞이하는 편안함

22.10.24 (월)

주말 동안 쉬었더니 몸속에 숨어있던 '가기 싫어'바이러스가 꿈틀거린다. 딸의 등교 시간에 맞춰 요가원 스케줄 잡기를 잘한 것 같다. 최대한 갈 수밖에 없게 해 버리기. 요가에 진심인 아내 덕에 맘이 흔들릴 새도 없다.


오늘도 선생님은 새로운 동작을 시키셨다. 자세명을 말하고 싶은데 마지막 자세 '사바아사나'를 빼고는 도통 외워지질 않는다.

정수리를 땅에 대고 손바닥과 삼각형 형태를 유지한 체 직각으로 구부린 팔 위에 무릎을 얹는 것. 이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데 집중해서 듣다 보면 동작이 그려질 때도 있어 신기하다.


여하튼 물그나무 서기의 중간 동작 같은 어정쩡한 상태에서 다리를 쭈욱 펴보라고 하셨는데, 순간 그게 되어버리니까 선생님도 놀라셔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셨다. 카메라를 가지러 간 짧은 순간, 복근의 힘은 죄다 소진되어 버리고 다시 몇 번을 시도했지만 근력이 딸리니 잘 되지 않았다. 그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땅에 머리를 박은 겁쟁이 꼴. 니콜은 옆에서 바라보며 오빠 잘한다고 하는데 왠지 내 고통을 즐기는 표정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


부장가아사나 자세에서 조용히 옆으로 다가오신 선생님이 턱을 잡아 뒤로 당겨 주실 때는 내 몸속에 숨어 있던 새로운 근육과 조우한 것만 같았다. 그것이 반가움인지 놀라움인지 모르겠는 '우억!' 소리가 새어 나왔다.

평소보다 10여분 긴 수련을 마치고 사바아사나 자세로 누워있는데 어느 순간 감은 눈 속에 보라색 광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게 니콜이 말했던 그 챠크라인가?! 신기해하며 바라보는 와중에 차담 시간이 찾아왔다.




잔기침을 하시던 선생님은 가을이 되니 비염이 오고 수업 때문에 식사가 불규칙해서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 중이시라고 했다.

"원래 수련자보다 지도자가 몸이 더 안 좋아요. 수련생들 살피려면 본인 건강은 뒤로 밀리게 되거든요."

"정말 감사한 일이네요. 수련생들을 위해 희생하시는 거잖아요."

"근데 인도 사람들은 고맙단 말을 안 해요. 그들은 베푼 사람한테 좋은 업을 쌓을 기회를 줬으니 되려 자신에게 감사해야 한다 생각하죠. 생각의 방향이 아예 달라요."

적반하장 같지만 왠지 멋지다. 인도에 가면 누구에게 도움받아도 전혀 감사할 필요가 없다니. 어쩌면 니콜처럼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가기 좋은 나라일지도.


수련 후의 나른함 탓인지 눈꺼풀이 풀린 니콜이 말했다.

"선생님 저는 요즘 잠이 너무 많아졌어요. 우울증 진단 전의 저처럼 아무 때고 잠이 와요. 아까 안짱다리 상태에서 뒤로 누워 5분 버티기 할 때도 편안해지면서 잠이 오더라고요. 특히 사바아사나 자세를 할 때면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관짜고 들어갈 기세였다.)

"요가는 고통을 미리 받아들이는 훈련이지요. 고통이 오기 전에 스스로 고통을 취하잖아요. 평소에 워낙 고통스럽게 수련을 하다 보니 고통이 와도 별로 두렵지가 않아요. ㅎㅎ"


선생님은 이야기 도중 카페 '성지'에서 사 온 원두를 꺼내 핸드드립을 해주셨다. 미동 없이 한 손으로 물줄기를 돌리는 폼이 보통 솜씨가 아니다. 알고 보니 커피를 좋아해서 따로 배우기도 하고 커피 성지를 찾아 카페 투어도 엄청 많이 다니셨단다. 그러다 정착한 곳이 카페 '성지'. 결국 성지를 찾은 것이다.


우리 부부도 요가를 통해 찾고 싶은 것이 있다. 건강과 더불어 정신적인 단단함. 더 나아갈 수 있다면 치우침 없는 해탈의 경지까지. 우리 역시 성지를 찾을지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지는 모르겠으나 차를 나누며 웃고 있는 우리로써도 이미 충분한 기분이었다.


여기가 커피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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