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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Oct 27. 2022

뉴 페이스는 괴로워

22.10.26 (수)

여느 때처럼 수련 시작 전 몸을 풀고 있는데, 요가원의 공기가 달라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요가인의 포스 뿜 뿜 하는 젊은 피의 등장.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S양은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쭈~욱 쭈욱~ 원피스의 루피인가. 스트레칭하는 것만 봐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가르쳐야 할 분이 요가원엔 왜 왔을까. 괜히 쪼그라들어서 눈을 감고 누워 버렸다.


"자, 발을 앞으로 쭈욱 펴시고~ 단다 아사나." 시작을 알리는 선생님의 음성.

니콜이 고수와 함께 하면 좋은 점이 있다고 했다. 자세가 잘 나오면 선생님께서 욕심을 내시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리 쪽엔 관심이 덜 하다는 것이다. 오늘은 비교적 수월하게 하겠구나, 내심 기대했다.


어떤 자세를 말씀하시든 바로 해내는 S양. 역시 예상대로 선생님은 바싹 붙어서 조련하기 시작했다.

"헙, 으헉~!" 흡사 짐승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비명. 내가 냈던 소리와 비슷한 걸 보면 기습적인 상황에서 인간이 내는 보편적인 소리인가 보다.

한 가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이 있었다. 분명 우리에게 관심을 덜 주시긴 하는데 S양을 조련하는 동안 계속 자세를 취하고 있어야 한다. 평소보다 수련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수련시간 동안 마지막 동작인 사바아사나(송장자세) 자세를 세 번이나 취했다. 힘든 동작 뒤에 휴식을 주기 위함인 것 같다. 한 시간 반 동안 죽었다 살아나기를 세 번이나 반복하다니, 살고 죽고. 죽고 살고. 요가란 우리 인생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구나.



S양은 저 멀리 화북에서 아는 언니 소개를 통해 왔다. 언니는 S양을 보내 놓고 2주째 요가원에 나오지 않고 있다.

"언니가 그러는데 새벽 요가 시간에 선생님이 몸을 재조립해 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순간 우리 얼굴이 그려진 레고 블록을 끼워 맞추는 선생님이 떠오르며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알듯 모를 듯한 연한 미소 때문에 더 무섭다.

"너무 강하게 수련시키다 수강생들 다 떨어져 나가면 어떡해요." 오픈 한지 한 달도 안 된 요가원에 매일 부부 둘 만 앉아서 수련하는 것이 불안했던 니콜이 말했다.

"망할 걸 각오하고 하는 거지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요가원에 나와요. 목을 풀어야 하니까 차도 한 잔 하고 히터도 미리 틀어 놓고요. 근데 아무도 안 올 때가 있어요 ㅎㅎ."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눈은 슬퍼 보인다.


니콜은 요가원에 다니고 나서 변화한 부분과 차담의 매력을 어필하며 S양에게 작업을 걸었다. 나 역시 여기 보이차가 기가 막히며 선생님이 웬만한 바리스타보다 커피를 잘 내린다고 양념을 쳤다. 선생님이 영업을 안 하니 제자들이 알아서 하고 있다.


S양은 나가면서 "다음에 뵐게요. 선생님."이라고 했는데, 다음이 언제 일지는 모르겠다. '언제 밥 한 번 먹어요.' 같은 의미인지 정말 다음 회차를 말하는 것인지. 꾸준히 다니기엔 집이 너무 멀어서 힘들 텐데, 우리가 픽업이라도 해야 하나. 별 오지랖을 다 떨면서 점심을 먹었다. 요가 후에 먹는 점심은 신의 선물과도 같다. 몸의 감각 기관이 활짝 개방된 상태여서 인지 쫙쫙 빨아들이는 느낌이다.


식사 후 소화도 시킬 겸 한라수목원으로 차를 몰았다. 요가원 > 원신 식당 > 한라수목원이 하나의 루틴이 된 것 같다. 지압돌 걷기를 해 보니 통증이 거의 없다. 발바닥이 물파스를 바른 것처럼 화하게 시원했다.

수목원의 나뭇잎들은 날이 갈수록 채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가을 햇살이 수분은 날리고 예쁜 색만 남겨 놓았다.

나오는 길에 한 무리의 할머니들이 한라수목원 표지석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하호호' 구르는 낙엽에도 신이 나신 모습이다. 할머니들의 알록달록한 등산복이 가을 숲과 잘 어울렸다.


오늘 밤엔 잠이 더 잘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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