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보문산에 있던 대전 유일의 케이블카가 멈춰 섰다. 대전 엑스포 이후에 대전 오월드, 꿈돌이 랜드 같은 신상 놀이공원들이 생겨났고, 보문산에 있던 그린랜드와 푸푸랜드는 구닥다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 때 일 평균~500명을 넘나들던 수송객수는 하루 10명이 체 안될 정도로 줄어들었고, 사람이 찾지 않는 케이블카는 존재의 이유를 잃었다.
내 또래 친구들의 장롱 속 앨범을 펴면 엄마 아빠, 혹은 친구들과 보문산에서 찍은 사진 한 두장은 반드시 들어 있다. 가족 나들이에서 학교 소풍까지 수많은 추억들이 보문산에 쌓여있고 산의 입구에 있던 케이블카 정류소는 나들이의 흥을 돋우는 촉매 같은 것이었다.
우리 집 역시 장롱 속 앨범이 있다. 모서리가 다 해져서 너덜너덜하고 내지에 붙은 필름지는 오래되어 삭아서 접착력을 잃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가 고모네 식구들과 가족 나들이 가서 찍은 사진이다. 잔뜩 들떠있는 젊은 남녀. 엄마도 아빠도 지금의 나보다 어리다. 사진 중에는 케이블카 안에서 찍은 사진도 있다.
위이잉~ 소리를 내며 와이어를 타고 들어오는 케이블카에 올라탈 때의 긴장감, 발 밑으로 흘러가던 나무의 정수리와 기암괴석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장면들은 몇 안 되는 꼬꼬마 시절의 기억중 하나다.
당시의 보문산 케이블카
니콜이 목포에 가서 해보고 싶은 걸 하나 골라보라고 해서 검색하던 중 바다 위에 떠 있는 케이블카 사진을 찾았다. 바로바로 목포 해상 케이블카.
3.23km의 국내 최장길이. 베트남 빈펄 케이블카를 능가하는 아시아 최고의 케이블카. 온갖 화려한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나를 잡아끈 것은 유달산의 바위와 나무들을 발아래 둔 사진이었다(크리스털 캐빈은 바닥이 투명이다.) 어린 시절 보문산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풍경과 꼭 닮아서 추억 속으로 소환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딸을 데리고 발 밑을 내려다보며 그 시절의 감정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성인이 된 딸이 혹 서울 생활을 하게 된다면, 남산 케이블카를 보며 지금을 떠올렸으면 하는, 다소 엉뚱한 바람도 있었다.
대기선에 서서 케이블카가 오고 가는 풍경을 구경했다. 위이이이이잉~ 시원한 소리와 함께 정거장에 들어오는데 너무 빨라서 그대로 부딪혀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되었다.
"자 저쪽에 들어오는 걸로 타시면 됩니다." 잔뜩 졸아 있는 니콜과 쑴을 데리고 의자에 앉자마자 케이블카는 속도감 있게 줄을 타고 오른다. 발 밑을 스칠 듯 지나가는 소나무와 기암괴석들, 저 멀리 보이는 목포 시가지.
근 40년 만에 타본 케이블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해진다.
케이블카의 와이어는 필름처럼 이어져 10대의 나를 지나 20대로 향하고, 마지막 정류장에 다다를 무렵엔 어여쁜 딸과 아내를 둔 40대 중반이 가장이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