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의사의 한의학 이야기
서울 종로에서 20년간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주로 진료한 병이 면역질환입니다. 면역이 항진되어 야기되는 알레르기, 아토피, 자가면역 등을 연구했지요. 난치성 질환을 상대하며 낮은 치료율과 잦은 재발로 고민했는데 제주 한달살이 후에 자연 치유된 환자를 접하면서 제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제주 생활만으로 호전된 환자들이 연이어 목격되자 서울의 한의원을 제자에게 양도하고 제주로 왔습니다.
면역질환 연구를 위해 입도한지 8년. 제주를 살피고, 도민의 건강과 생활을 관찰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제 글은 8년 동안 제주에서 궁리한 내용을 담습니다. 실체를 분석하지 않고, 드러난 현상만 해석하는 한의학의 특성상 제 글에는 과학 언어가 사용되지 않지만 한의사로서 한의학 언어로 쉽게 설명하려 합니다.
2014년, 면역질환 치료의 포부를 품고 온 제주에서 당혹스러운 현실을 경험했습니다. 뭍에선 없던 알레르기가 입도 후에 갑자기 생겼다는 이주민을 여럿 접한 것입니다. 육지에서의 알레르기가 제주 생활로 자연 치유됨을 기대한 입장에서 정반대의 케이스들을 만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지요.
그분들을 관찰한 결과 ‘화분증’에 주목했습니다. 꽃가루 알레르기 말입니다. 해안 아닌 중산간에 거주하면서 알레르기가 봄철에 갑자기 생긴 이주민은 화분증이 의심됩니다. 70년대부터 정부의 녹화사업으로 제주에 대규모로 인공 조림한 삼나무. 제주에서 흔한 수종이 되었는데 문제는 삼나무 꽃가루가 화분증의 주요 원인입니다. 일본 화분증 환자의 90%가 삼나무 탓이라고 하지요.
전쟁에서 패한 일본이 재건하고자 생육 빠르고, 건축 재료인 삼나무를 대량으로 심은 결과, 화분증 환자가 급증했습니다. 일본에선 봄철마다 삼나무 꽃가루 배출량이 방송됩니다. 조림사업의 방향도 삼나무에서 벗어났고요. 중산간에 인공 조림된 삼나무 숲이 많은 제주 역시 일본과 같은 상황이니 면역질환자는 주의하세요.
제주에 입도한지 8년 된 선배 이주민으로서 제주 이주를 고민하는 분과 상담하면 알레르기 여부부터 묻습니다. 알레르기 체질이나 가족력이 있는지 확인하고요. 만약 있으면 삼나무 숲에서 먼 곳에 거주하도록 조언 드립니다. 거주지가 공교롭게 삼나무 숲 근처라 꽃가루에 대량 노출되면 평소에 없던 알레르기가 갑자기 발병할 수 있습니다. 면역이 쉽게 항진되는 체질인 경우에 그렇습니다.
화분증을 봄철 3개월만의 고생으로 여기지 마세요. 면역 항진은 도미노처럼 일단 한번 쓰러지면 다른 염증이 연달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꽃가루 자극이 사라져도 다른 염증으로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한의학의 치료법이 있고, 양방의 대증약이 존재해도 자극원을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피하지 않고 치유되는 방법을 찾고자 제가 제주에 왔지만 말이죠.
현재 통계적으로 알레르기 비염 환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 제주입니다. 반면에 알레르기와 같은 면역질환이 제주 생활로 호전되는 사람 역시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아이러니한 상황은 면역 연구를 위해 제주에 입도한지 8년차인 저를 계속 붙들고 있네요. 제 공부는 계속 이어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