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립미술관 '마르크 샤갈 특별전'에 다녀오다
지난 휴일, 더위도 피할 겸 제주도립미술관 '마르크 샤갈 특별전'을 보러 갔다. '그림'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두려움이 증폭되는 나로서는, 미술 감상 역시 막연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영역이다.
입장권을 구매하러 갔더니 3시부터 도슨트 설명이 있다고 알려준다. 그 때 시각은 2시 55분. 마치 도슨트를 들으려고 시간을 맞췄다고 할 만큼 정확히 도착했다. 입구 앞에는 도슨트 설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못해도 30명이 줄 서 있었다.
나는 미술에 조예가 전혀 없음에도 도슨트 설명은 왠지 꺼려졌다. 그림을 느끼기 전에 화가와 작품에 대한 지식과 정보에 갇혀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나는 그냥 그림만 보는 쪽을 선택했다. 어차피 아이와 다니면 설명에 집중할 수도 없을 테니까.
대신 각자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놓고, 그 중에 최고의 작품을 선정해보자고 제안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아이는 눈 앞에 있는 그림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찍어달라고 졸라댄다.
"엄마, 이거 찍어 줘."
"엄마, 이것도 찍어 줘."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왔지만 꾹 참고 아이의 요청대로 사진을 찍었다.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그림을 선택하면 좋으련만, 장난 치듯이 아무거나 찍어달라는 것 같아 내가 제발등을 찍었나 싶었다. 뱉어놓은 말이 있으니 전시실을 나올 때까지 감정을 억누르며 아이가 가리킨 그림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밖으로 나와 굿즈 코너를 구경했다. 샤갈의 주요 작품을 담은 엽서 6~7장 정도가 놓여 있었다.
"엽서 하나 골라도 돼?"
"그럼. 네가 마음에 드는 그림으로 골라 봐. 엄마가 사 줄게."
아이가 주저없이 엽서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하는 말.
"내가 골랐던 그림 중에는 이거 하나만 엽서로 나와 있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동시에 폰 사진함을 열어서 방금 전 찍었던 사진들과 엽서를 대조해봤다. 아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이가 찍어달라던 그림 20여개 중에 엽서로 제작된 그림과 똑같은 것은 지금 아이 손에 들린 그 엽서 그림이었다.
와.... 나는 잠시 멈춤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의 사진을 찍어줄 때를 돌이켜봤다. 그림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던 아이의 태도, 가볍게 툭툭 말을 던지는 아이의 태도, 나는 그 겉모습만 보고는 아이가 건성으로 아무렇게나 이야기하고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내 눈이 보지 못하는 아이의 내면은 내가 가늠할 수도 없는 속도로 세상을 파악했고 아름다움을 분간해냈다. 감탄스러웠다. 내 생각은 아이에서 샤갈로 옯겨갔다. 샤갈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그의 생각, 감정, 내면은 어느 정도 우리에게 전해진 것일까.
도슨트의 설명을 듣지 않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넉, 우리 셋은 각자가 꼽은 최고의 그림을 공개했다. 그 선택의 이면에는 또 어떤 보이지 않는 무수한 이야기가 들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