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읽은 책] 달팽이 헨리(카타리나 마쿠로바 글·그림)
카타리나 마쿠로바 글·그림
김여진 옮김
노는날 펴냄
2022년
달팽이를 키워본 적 있으신가요? 우연히 길에서 발견한 달팽이를 집으로 데려와 상추 몇 장과 함께 통에 넣어두고 키워본 기억이 떠오릅니다.
일단 식성이 참으로 좋습니다. 새로 갈아 놓은 상추잎이 몇 시간도 안 되어 주먹만 한 구멍이 나 있는 걸 보면 달팽이의 먹는 양이나 속도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얼마나 정직한지요. 상추를 먹으면 초록색 똥, 당근을 먹으면 빨간 똥, 뚜껑 대신 덮어 놓은 종이를 먹은 날에는 하얀 똥, 무엇을 먹었는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보여줍니다.
날쌔기도 이를 데 없지요. 어떤 날 잠깐 뚜껑을 덮지 않을 때에는 순식간에 탈출을 감행하는데 웬만하면 집 주변에서 발견되기는 하지만 가끔은 10여 미터 떨어진 곳까지 가 있는 녀석을 겨우 겨우 찾아서 집으로 데려온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전 달팽이를 참 좋아합니다. 책 『달팽이 안단테』가 저에게는 인생 책 중 하나인데 이번에 만난 『달팽이 헨리』라는 또 하나의 너무나 재미있는 달팽이 친구 책을 만났습니다.
어느 날 세상에 태어난 달팽이 헨리는 다른 달팽이들과 달리 점액질이 분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직 방향으로는 올라갈 수 없고 오로지 바닥만을 기어 다닐 수 있죠. 헨리는 줄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매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하는 헨리. 그래도 노력으로 되지 않는 일도 있는 법.
헨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어떻게 채워 나갈까요?
이 책은 '카타리나 마쿠로바'라는 슬로바키아 출신 작가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저에게는 생소한 작가인데 이 책을 통해 접한 그의 글과 그림이 마음에 들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려 합니다.
작은 정원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달팽이의 시선으로 그려낸 자연의 풍경은, 마치 푸른 숲 속을 보는 것처럼 기분마저 청량해집니다. 페이지당 1~2줄의 글밥으로 영유아에게도 읽어주기 적합한 이야기 구성입니다.
다시 제가 키우던 달팽이들이 떠오릅니다. 헨리와는 달리 점액질이 풍부해서 통 안에 넣어두기 무섭게 수직 방향으로 탈출하기 바빴던 나의 달팽이들. 외부 장애물(나라는 인간)의 끊임없는 방해를 뚫고 꼭 올라가 보고 싶은 꼭대기가 있었던 건 아닌지 말입니다.
괜히 미안해지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