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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껏 Mar 19. 2024

과제 해결에 급급하던 내게 던져진 보석같은 질문들

경력잇는 여자들 <엄청난 가치> 2강_자기돌봄

<창가의 여인>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이 그림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적어 주세요."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내가 저녁을 준비하고 설거지하는 뒷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떠올렸다. 명화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 가사노동의 한 장면이라는 게 좀 씁쓸하지만. 그런데 나는 그 시간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창을 통해 보이는 뒷집 정원과 그곳을 뛰노는 강아지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저녁을 준비할 때면 석양이 날마다 다르게 비추는데 그 빛깔을 감상하며 설거지를 하면 피로도 덜어진다. 그러고 보니, 옆에 놓인 물건은 마치 주방세제 같기도 하다. 


 나와 대화를 나눈 분은 아이를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 같다고 말했다. 아이를 금방 학교에 보내놓고서도 금세 아이가 궁금해지는 엄마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또 하나, 옷을 멋지게 차려입은 걸 보니 바깥 약속이 있어 보이는데,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을 것 같다고도 보탰다. 


 같은 그림을 보고서도 누군가는 손에 핸드폰이, 다른 누군가는 손에 고무장갑이 들려 있다. 


 <엄청난 가치> 2강에서는 하브루타를 활용해 '자기돌봄' 시간이 진행됐다. 이 과정 전체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질 시간이다. 하브루타는 유대인의 교육 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계속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하면서 스스로 터득해 가는 방식이다. 문답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얻는 깨달음인데, 위 질문에서도 나와는 다른 사람을 들여다볼 수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 


 자기돌봄이란 무엇인가? 


 질문이 던져졌다. 나는 '신체적 정서적으로 자신을 지속적으로 살피며 발견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적었다. 얼추 뜻이 맞았다. 하지만 용어적으로는 여전히 조금은 낯설다. 돌봄의 대상이 늘 타인, 여기 모인 엄마들의 경우 아이와 가족에 맞춰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과정을 하는 동안 '자기돌봄'이란 단어와 친해지고 매 순간 '자기돌봄'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도록 훈련해야겠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중 하나인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조기현, 홍종원 지음/ 한겨레출판/ 2024)』에도 마침 자기돌봄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어 반가웠다. 


'돌보는 사람은 누가 돌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듣고, 나를 돌볼 수 없으면 남을 돌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 내가 나를 돌보는 것도 절대로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나를 돌보면 그게 완전히 일대일 관계 같지만 사실 애초에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홀로 서 있는 존재가 아닌 거죠. (p.195~196)


 나 역시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 과정에서 나를 챙기는 것만 잠시 잊고 있었다. 나에게 주어지는 체크리스트를 하나하나 지워가기 바빴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본 기억이 없다. 지금 바로 "너 지금 괜찮니?"라고 소리 없이 나에게 물어본다. 그 질문이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살짝 맺힌다. 그래도 이제는 힘이 난다. 질문해 줄 사람을 찾지 않아도 <엄청난 가치> 자기돌봄 시간에서 무수한 질문들과 마주할 테니.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모르는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갖기 마련인데, 나 자신은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잘 알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관심을 두라고. 그렇지. 내 속엔 내가 모르는 내가 너무도 많다.  


대화할 때 사용하는 3분, 5분 모래시계.


 질문을 매개로 옆 짝꿍과 자신의 대답을 공유하는 것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나와 다른 생각 속에서 나를 더 또렷이 발견할 수 있었다. 비슷할지언정 같은 생각, 같은 이야기는 없었다. 앞으로 계속될 자기돌봄 시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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