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잇는 여자들 <엄청난 가치> 3강_ 시간관리
지난 주 목요일 '시간관리'에 대해 배웠다. 시관관리 전용 다이어리도 받았다. 이제 잘 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몇일째 다이어리를 펼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음 수업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왜 나는 다이어리를 펴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일단 시간관리 다이어리 쓰는 일이 내 습관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에 몇 분만 투자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다이어리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좀체 머리에 맺히지 않는다. 하루가 다 지나고 난 다음에야 '맞다. 다이어리를 써야 하는데...'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식이다. 습관의 힘은 이토록 무섭다. 또 하나, 계획하는 일을 기록하는 일이 익숙지 않은 내 성향 탓도 있다. 그렇다. 나는 다이어리 정리를 잘 하지 못한다. 그럴 듯한 다이어리를 구입해 놓고서도 고작 '반드시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일'들만 메모식으로 적어놓는다. 그 외 부분은 백지로 남겨 놓고 만다. 대신 회고의 성격을 띈 일기 쓰는 일은 꾸준히 하는 편이다. 그래, 이제 시간관리와 친해져야 할 때가 왔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시간관리'라는 단어에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평소 세부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성향이 아닌데다가 '시간관리'라는 말이 바쁘게 살아가는 이미지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업의 첫 순서는 지난해를 회고하기. 음, 이게 시간관리라고? 흥미가 생겼다.
과거를 마무리짓는 것은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당신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 데비포브
우리는 지난해 어떤 성취를 이뤘는지 반대로 어떤 실패를 했고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를 다양한 영역별(가족, 건강, 관계, 재정 등)로 적어보았다. 나에게 지난 해는 무척 특별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갑작스레 휴직을 하게 되면서 삶 전체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제주 1년살이를 시작했다. 2023년의 전반기와 후반기가 명확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전반기가 매우 불균형적인 모습이었다면 후반기는 균형을 회복하고 있음이 확연히 느껴졌다. 이렇게 1년 전체를 회고하지 않고 흘려보냈다면 감지하지 못했을 변화다. 지난해 회고가 끝났으니 이제 올 한해를 그려볼 차례다. 내가 희망하는 것들, 목표하는 일들을 쭉 떠올려보았다. 예전의 나였다면 업무 성격의 과제들만 떠올렸을 테지만, 이곳에서는 나의 마음건강과 공동체 차원에서의 목표도 따로 적어볼 수 있어 좋았다.
다이어리를 펼쳐본 것은 이 모든 과정이 끝난 후였다. 다이어리가 새롭게 다가왔다. 시간들이 뭔가를 하라고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해 보라고 편안하게 주어진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다이어리의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시간표 윗 부분은 이벤트 영역과 to-do 영역이 분리되어 있는 점, 날짜와 무관한 할 일을 적어놓아 상기시켜 주는 점, 현재 하고 있는 독서 칸이 따로 있는 점 등 여태 내가 하나에 뭉뚱그려 처리해왔던 것들을 적절히 나눠 놓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피드백 영역. 선생님은 하루를 살아온 내게 칭찬하고 싶은 점을 3가지씩 적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보니 뭔가를 하라고 나를 압박했던 것은 다이어리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시간표를 꽉꽉 채워야 하는 부담은 잠시 내려놓고 나에게 주어진 이 새로운 시간들을 편안하게 받아들여야겠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를 의미로 채워나가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결국 시간관리는 내게 다가오는 시간과 내가 보낸 시간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행위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