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잇는 여자들 <엄청난 가치> 26강_글쓰기
어느덧 글쓰기 수업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유년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각자의 기억을 쭉 훑어왔다. 오늘의 주제는 ‘죽음’이다.
‘죽음’이란 단어를 접하는 순간 익숙하게 다가왔다. 요즘 우연의 일치인지 죽음 또는 노화, 돌봄을 주제로 한 책들을 여러 권 읽으면서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죽음을 기피하거나 터부시 하지 않을 정도의 마음가짐을 갖춰달까. 또한 누구나 살아가는 인생이기에 내가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살겠다고? 그와 정반대다. 내가 특별하지 않으니 서로 비슷한 사람들과 어우러져야만 가장 즐겁고 의미 있게 살 수 있음을 깨달았다.
선생님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인생에서 후회하는 대표적인 10가지를 말씀했다.
1. 더 많은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지 않은 것
2.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하지 않은 것
3. 사랑을 표현하지 않은 것(감사, 미안함, 용서)
4. 너무 많이 일한 것
5.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한 것
6. 건강을 소홀히 한 것
7. 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것
8. 행복을 추구하지 않은 것(과거의 후회와 미래 걱정)
9. 스트레스와 걱정에 너무 집착한 것
10. 사회적 기여 부족
색깔이 들어간 두 가지 항목은 다른 점은, 나머지 것들이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인 데 반해 너무 많이 한 것에 대한 후회라는 점이다. 나는 이 중 몇 가지나 해당이 될까? 지금이라도 이 항목을 보며 나중에 후회할 만한 일을 줄여나가는 데 삶의 에너지를 쏟아봐야지.
죽음에 대한 10가지 질문이 우리 앞에 주어졌다. 그중 한 가지 질문은 ‘당신이 경험한 최초의 죽음은 무엇인가요? 그때의 감정을 떠올려 보세요’였다. 나는 당장 내가 키우던 강아지 3마리의 죽음이 차례로 생각났다. 뒤이어 할머니의 죽음.
어린 시절, 키우던 두 마리의 강아지는 사실 마당에 막 풀어놓고 키웠기에 질병에 취약했다. 당시는 반려견에 대한 의료 개념도 없어서 아픈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중 한 마리가 죽을 때까지의 고통을 고스란히 옆에서 지켜봤다. 임종을 지키고 죽은 강아지 사체를 상자로 옮기려는데 항문에서 어떤 분비물이 쏟아졌던 기억이 또렷하다. 죽음에 대한 첫 번째 충격은 오물에 대한 감각과 연결되는 이유다.
다른 한 마리는 죽을 것을 감지했는지 죽기 일주일 전부터 깊은 수풀로 숨어들었다. 죽기 전까지 우리는 강아지를 찾으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 왜 자꾸 숨지? 어린 나의 의문은 커가면서 죽음을 앞둔 존재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직접 체험으로 배우며 서서히 풀려나갔다.
성인이 되어 키우던 강아지 뚝이, 그리고 1년 뒤 돌아가신 할머니의 죽음은 너무나 슬펐지만 장례 절차를 다 마친 날의 날씨가 너무나 화창했다. 마음이 벅차오르게 눈부시게 슬프다는 기분이 이런 걸까, 생각이 들 만큼. 공교롭게 두 죽음 모두 봄에 일어났다. 내가 죽음을 떠올릴 때 파란 하늘과 노란 들꽃들의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최현숙 저자의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를 읽으며 죽음 뒤에 붙는 동사가 눈길을 붙들었다. 그는 ‘죽음에 닿다‘, ’죽음에 도달하다‘, ’죽음을 집어 들면 된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동안 보지 못했던 단어의 조합이 은근히 어울렸다.
그래. 앞으로는 죽음에 닿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보자. 죽음에 도달하는 순간 후회 따위는 남기지 말자. 그리하여 죽음의 순간이 왔을 때 너무나 자유로운 마음으로 죽음을 집어 들자.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