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어느 날
뜨겁던 열기의 기세가 꺾이고
선선한 가을바람 부는 날
노을에 붉게 물든 하늘에
물 한 방울 떨어뜨려
서서히 옅어져 가며
얼굴에 드리워지면
세상 아름답다며 투박한 손으로
볼을 어루어 만져 주던 그대.
그 손길에 하루 동안 담아두었던
온갖 불편함들이 흘러가면
스르르 눈이 감기며
그대 품에 안기고,
세상 무엇이 불쑥 다가와도
안전하다 느꼈던 그대 품.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홀로서기 힘든 날이면
나른했던 어느 날처럼
말없이 안아주던 그대.
비록 화려했던 시절은
물 위에 떨어진 물감처럼
엷게 되어가더라도
서로를 향한 마음의 깊이는
짙어져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