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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un 10. 2016

법문(法文)에 갇힌 법치주의, 법치주의에 갇힌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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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사회통합 및 국민행복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4년 7~8월 사이 전국 성인 남녀 3천6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였다.     


조사 결과 주요 기관‧단체‧분야의 신뢰도에 관한 질문에서 입법부(국회)가 17.4퍼센트로 가장 낮은 수치를 얻었다. 30.7퍼센트의 사법부(법원), 32.4퍼센트의 검찰‧경찰이 그 뒤를 따랐다. 행정부는 33.2퍼센트를 얻어 꼴찌에서 네 번째였다.     


입법부는 법률을 만드는 곳이다. 사법부와 검찰‧경찰은 법을 근거로 잘잘못을 따지거나 범죄 사실을 조사한다. 행정부는 법령에 따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목적을 실현하는 일을 한다. 모두가 입만 열면 법과 절차, 법치주의와 질서를 강조하는 권력기관들이다. 보사연의 조사 자료는 정작 이들이 국민들로부터 그 힘에 합당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였다.  

  

2    


한자 자전에 따르면 ‘法(법)’은 “물[氵]처럼 공평하게 죄를 조사하여[廌] 바르지 못한 자를 제거한다[去]”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daum한자’ 참조). ‘죄를 조사한다’는 뜻의 ‘廌(채)’자는 원래 시비나 선악을 판단하는 신수(神獸)인 ‘해태’를 가리킨다.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어야 해서 ‘法’이라는 글자가 나왔다는 ‘어원속해(語源俗解)’적 풀이도 있다. 시비나 선악이나 자연스러움을 도덕, 윤리, 보통의 상식 등과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새삼 법의 자의(字意)를 한가롭게 따져보는 까닭이 있다. 법이 인간의 선한 본성과 의지를 수호하는 도덕이나 윤리, 상식 등과 어긋나게 만들어지고 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법에 따른 국가 통치의 원리인 법치주의가 위정자와 권력자들의 언어로 쓰이는 일이 부지기수다. ‘법대로 해 보자’며 법에 호소하는 약자와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법의 이름으로 묵살된다.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3    


영미법계는 ‘법의 지배’를,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대륙법계는 법치주의, 곧 ‘법에 의한 지배’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고 한다.[아래 법에 관련된 내용은 노딜다짱구패 엮음(2016), <우리는 민주공화국에 산다>를 참조함.] 이들은 ‘악법’을 바라보는 관점을 통해 구별된다. 영국에서는 악법이 법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그것이 악법이든 선법이든 모두 법으로 간주된다. 우리나라는 대륙법계를 받아들였다. 법의 형식을 띠고 있다면 법적 효력을 갖는다는 법치주의가 더 일반적이다.    


독일식의 형식적 법치주의가 가져온 폐해는 심각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946년 11월 20일부터 1946년 10월 1일까지 이루어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 5500만 명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군인보다 민간인이 3~6배 많았다. 유대인 600만 명과 집시 50만 명, 동성애자와 공산주의자 등의 기타 부류 수십만 명이 ‘법률과 명령에 따라’ 조직적으로 학살되었다.     


독일 나치의 학살극은 합법적이었다. 법률과 명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였다. 이에 따라 뉘른베르크 재판은, 법률이 없으면 범죄가 없다는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했다는 식의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전범재판을 주도한 연합국 측은 인류에 대한 범죄와 같은 인도에 반한 범죄는 성문법 유무나 죄형법정주의 합치 여부와 무관하게 가장 근본적인 행위금지규범의 전형이라는 시각을 견지했다.     


검찰이 기소한 나치 핵심 인물 24명과 6개 기관의 전쟁범죄 규명을 위해 공판이 403회 이어졌고, 영상과 사진 등 5000여 개의 증거 자료가 제출되었다. 재판 결과 교수형 12명, 종신형 3명, 10~20년 유기형 4명 등의 선고가 내려졌. 인도에 반한 죄는 공소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2015년 4월에 아우슈비츠의 경비원으로 근무했던 93세 노인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나치 독일의 천인공노할 전쟁범죄가 가져온 뼈아픈 교훈과 성과가 또 있었다.    


2차대전 후, 법문(法文)에 갇혀 있던 법치주의는 형식은 물론 내용의 측면에서도 정당함을 요구하는 형식적‧실질적 법치주의를 말하게 되었다. 헌법의 가치와 공동체의 목적에 맞는 합목적성이 법의 이념으로 다루어졌고, 헌법을 기준으로 합법성을 판단하는 위헌법률심사가 보편화되었다. 법의 해석은 법문을 기본으로 하되 법 원리와 법 원칙들을 찾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자연법론(‘자연법’은 인간의 이성이나 마음 속의 영원법으로, 양심을 통해 알 수 있다고 함)은 법학의 범주에 귀환했다. 법은 정당하게 만들어지고, 옳은 내용이 담겨야 한다.(<우리는 민주공화국에 산다>, 280쪽)    


4    


2012년부터 시작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법외노조화와, 최근의 전교조 미복귀 전임자 35명에 대한 대량 해직 사태를 맞으면서 법의 존재 이유와 기능, 법치주의의 의미를 두루 따져볼 때가 많다.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든 정부와 사법부의 판단은 정당한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아래 <노동조합법> 관련 내용들은 전교조 홈페이지 ‘자료마당’에 공개된 ‘전교조 헌법노조의 지위, 고법판결의 부당성 등’(2016.1.21.)을 참조함.] 제2조 제4호 본문에서 규정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정의 요건은 다음과 같다.    


①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주체성)
② 자주적으로 단결하여야 한다.(자주성)
③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여야 한다.(목적성)
④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여야 한다.(단체성)    


이들 주체성, 자주성, 목적성, 단체성은 노동조합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적극적 요건’이라고 한다.     


2조 4호 본문 아래에는 노동조합의 5가지 ‘소극적 요건’이 “다만, 다음 각목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는 단서 조항과 함께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가.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
나. 경비의 주된 부분을 사용자로부터 원조받는 경우
다. 공제·수양 기타 복리사업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라.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다만,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하여서는 아니된다.
마.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기 위해 활용한 요건은 적극적 요건 5가지 중 ‘주체성’과 관련된 항목이었다. ‘근로자’가 아닌 해직교사가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므로 전교조는 노동조합으로서의 주체성을 상실하였고, 이에 따라 <노동조합법>상의 노동조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부는 노동조합의 소극적 요건인 노동조합법 제2조 4호 라목 단서 조항과 관련하여 “단 한 사람의 자격 없는 조합원이 가입‧활동하는 것만으로도 노동조합의 주체성은 상실되므로 노동조합으로 인정할 수 없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는 ‘형식설’에 따른 해석이다.     


전교조는 조합원 자격 여부는 노조가 자주적으로 결정할 문제이고, 비록 법상 자격 없는 조합원이 가입‧활동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로 인해 노동조합의 자주성이 실질적으로 훼손될 경우에만 노동조합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른바 ‘실질설’을 주장해 왔다. 전교조는 노동학계의 통설이 실질설이며, 해고자의 조합원 인정은 문명사회의 기본으로 세계적 추세라는 관점을 강조한다.    


5    


일반적으로 ‘사법의 정치화’는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결정해야 할 사법적 판단이 권력자의 이해나 압력, 또는 법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이해에 종속된 경향을 띠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법부의 신뢰 하락 이면에 이러한 사법의 정치화 현상이 작용하고 있지 않을까.

   

전교조를 상대로 벌이는 정부와 사법부의 ‘망나니 칼춤’도 사법의 정치화와 관련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교조는 1999년에 합법화했다. 이후 10년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정부는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둘 수 있다는 전교조 내부 규약이 법령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전교조를 법 밖으로 밀어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2013년에 출범한 박근혜 정권과 그 사법부만 과감히 시도했다. 정치적 이유와 배경 외에 다른 어떤 것을 떠올릴 수 있을까.    


지금 전교조는 “불의가 법이 될 때 저항은 의무가 된다”라는 문구를 외치고 있다. 미복귀 전임자 35명이 해직을 각오하면서 정부와 사법부의 ‘전교조 죽이기’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전교조는 출범 10여년만에 ‘합법화’를 쟁취했다. 합법화 10여년이 지나 ‘법외노조’가 되었다. 모두가 ‘법’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일들이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미국 헌법학자 프레드 로델이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에서 일갈한 한 구절을 떠올린다.

   

일반인이 오늘날의 법 제도에 대해 존경심을 품고, 그의 삶을 법률가가 신비한 방식으로 다스리도록 기꺼이 내맡기는 이유는, 법의 원리에는 전혀 오류가 없고 그것이 법률가의 손에 가면 정의로운 결과를 낳는다는 세심하게 양육된 신화에 완전히 세뇌되었기 때문이다. ··· 만약 일반인이 법률가와 그들의 법에 대한 냉엄한 진실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지에 사로잡히면 공포를 갖게 된다. 공포를 갖게 되면 경외심을 품게 된다. 이리하여 진실로 의심할 바 없이, 저주받으리라, 법률가들이여!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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