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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Dec 04. 2016

나는 ‘인재론’을 믿지 않는다

1


“이른바 ‘인재’가 고향을 위해 무슨 일을 하나요. 출세하겠다고 혼자 죽자사자 시험 공부만 하죠. ‘인서울 대학’ 들어가 졸업하면 서울 있는 직장에 다니면서 서울에서 삽니다.”

“그렇기는 하지만요, 그들이 지역을 위해 힘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시청 공무원과 나누던 대화가 산으로 가고 있었다. 몇 년 전, 지역 인재 육성 명목으로 특정 학교에 지원금을 몰아주는 행태를 따지러 시청에 간 길이었다. 들고 간 현안이 뒤로 밀리고 ‘지역 인재론’에 관한 즉석 토론이 벌어졌다.


“그들이 고위 공무원이 되면 지역에서 예산을 따낼 때 도움이 돼요.”


실소가 나왔다.


2


나는 ‘인재론’을 믿지 않는다. ‘인재(人材, human resource)’라는 단어에 깔린 말법 자체가 문제다. 사람을,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나 도구로 전제한다.


이 사람이 저 사람으로 쉽게 교체된다. 이 사람의 고유한 자질과 특성이 그 자체로 인정받지 못한 채 저 사람의 것과 비교된다. 차이쯤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들이 차별의 근거로 행세한다.


‘능력’에 관한 사람들의 시선 문제도 있다. 가령 공공성에 대한 투철한 의식을 바탕으로 맡은 바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는 공무원이 능력 있는 공직자 대접을 받아야 하지 않는가. 공교육의 가치와 의의를 되새기면서 그 본연의 책무를 다하는 일에 매진하는 교사가 능력 있는 교사로 칭송받아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 적나라한 ‘헬조선’의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출세’하는지 잘 안다. 그래서 나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능력은 우리가 바라는,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공화국을 위한 능력이 아니다.


평범한 유권자들은, 출향해 이른바 ‘출세’한 뒤 국회의원에 입후보한 지역 인재에게 표를 준다. 능력과 자질이 뛰어나다며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만 하면 지역 발전이 따 논 당상인 것처럼 여긴다.


마침내 그가 금배지를 단다. 도도하다.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연락을 해도 감감무소식이다. 간신히 약속이 잡히면 보좌관이 대신 나선다. 지역구 민심 챙기는 일이, 자기네 의원들끼리 이너서클 만드는 일에 밀린다.


‘국’회의원이니 국가를 먼저 생각해야 옳다. 중앙 고위 공무원이면 고향보다 나라 전체의 행정을 우선시해야 한다. 지역구 예산 몇 푼 챙기는 일로 의정 활동의 성과를 평가하고, 지연 네트워크의 촘촘한 그물망을 잘 꿰고 있어야 능력 있는 공무원으로 대접받는 이 전근대적인 문화는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3


박근혜 탄핵이 이번 주 내내 정국과 뉴스의 중심을 차지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색깔을 드러낼 것이다.


며칠 뒤, 나는 우리가 진짜 인재와 가짜 인재를 확연히 구별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날의 탄핵안 가결이 새로운 정치 문화의 첫 번째 디딤돌이 되리라 확신한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박근핵닷컴(https://parkgeunhack.com/) 초기 화면의 캡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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