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10대를 아느냐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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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복종’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우리는 공무원이 그들 자신을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복종시켜야 하는지 잘 안다. 대통령, 장관, 차관으로 이어지는 관료 시스템의 상관이 아니다. 주권자 국민이다.
국가 ‘제도’라는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공무원의 현실은 다르다. 블랙리스트 작성 실무를 담당했다는 문체부 소속 어느 과장 이야기를 읽었다.([취재일기] 문체부 A과장의 죄 <중앙일보> 2017.01.23. 손민호 문화부 기자) 문체부에서만 32년을 근무했다는 그는 9급 공채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태 전 4급 서기관으로 승진한 그를 문화예술계 사람들은 헌신적으로 일했던 공무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덕분이었을까. 2013∼2016년 약 3년 동안 블랙리스트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사이 장관부터 과장까지 수많은 간부가 들고 났지만 그는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그러나 초등학생 딸을 둔, 이제 쉰 살이 넘은 그에 대해 칼럼을 쓴 기자는 이렇게 썼다.
“A과장의 죄는 32년 동안 조직의 명령에 따라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다. 그것도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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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명령에 따른 것을 ‘죄’로 보는 시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나는 중학교 교사다. 이런저런 공적인 자리에서 만나는 이들 대다수가 교육공무원이다. 우리는 ‘제도화한 인간’이라는 표현이 정확히 들어맞는 사람들이다.
‘나’는 조직의 명령에 따른 ‘불법적’이거나 ‘불합리’한 일들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 명령의 주체가 조직이라는 이유로 ‘불법’과 ‘불합리’를 쉽게 ‘합법’과 ‘합리’의 외피를 입혀 탈바꿈시킨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거는 것일 테다. ‘조직이 명령했으니 학교와 학생을 위한 것이다’. 이제 나는 자발적으로 조직의 명령을 예측하고 수행하기 시작한다.
3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조직은 추상체가 아니다. 국가가 참나무나 돌멩이가 아니라 ‘인민(people)’, 곧 살아있는 사람 하나하나로 이루어져 있다는 유명한 격언을 떠올려 보라.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가 만든 조직, 체제, 시스템, 제도가 인간적인 요인과 동떨어진 채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쩌면 인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조직이 저 먼 곳에 있는 신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조직은 모든 인간적인 요소를 거부한다. ‘죄인’이라는 그 문체부 과장은 직속 상관에게 분명 이런 말을 들었을 것이다.
“우리 조직이 명령하는 일이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까.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 같다. 9급으로 들어와 꾸준히 승진의 길을 달려왔다. 서기관 네트워크에 입성했으니 ‘성공’이었다고 자평할 만한다. 느지막이 둔 초등생 딸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길을 포기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신 같은 조직의 명령에 자발적으로 충성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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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자신이 양심의 목소리와 권위적인 조직의 명령 사이에 끼어있을 때 갈등에 휩싸인다는 것을 경험과 배움을 통해 잘 안다. 그런데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밀그램의 실험이 정확히 재현해 보여준 것처럼, 조직의 명령에 기꺼이 복종한다. 왜 그럴까.
나는 12년(어린이집과 대학까지 합하면 최대 20여 년이다.) 동안 이어지는 학교 환경이 큰 배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아이들은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 학교라는 제도적으로 위계화한 권위 체제 안으로 편입된다. 그들은 교과서뿐만 아니라 조직의 틀 안에서 행동하는 법을 배운다.
선생들은 아이의 행동 상당 부분을 통제한다. 그러나 아이는 선생들이 교장의 명령과 요구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권위자가 오만불손을 소극적으로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엄하게 꾸짖다는 것, 그리고 오로지 복종만이 권위자에 대한 적합하고 충분한 반응이란 것을 깨닫는다. - 스탠리 밀그램, <권위에 대한 복종>, 에코리브르, 201쪽.
평범한 사람들의 양심이 내는 목소리를 끄지 않을 방법은 없는 걸까. 밀그램은 실험에서 피험자들 간의 협력과 직접 접촉 등 또 다른 조건이 불복종을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밝혔다. 권위주의적 조직체인 학교를 연대와 분권과 협력과 참여가 이루어지는 민주주의 공간으로 바꾸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