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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Feb 15. 2018

학교 풍경

손준종의 <교육의 사회적 풍경>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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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준종 한국교원대 교수가 쓴 <한국교육의 사회적 풍경>(아래 ‘<풍경>’)은 ‘교육사회학의 주요 쟁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교육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강조하고, 한국교육의 계보학적 연구를 위한 아카이브에 대한 바람을 표방하는 저자의 시선에 걸맞은 표제들이다.     


저자가 책에서 풍경처럼 묘사하는 한국 교육은 때로 안타까움과, 때로 미묘한 기대감을 자아내는 흑백 모순의 스케치다. ‘한국교육의 역사적 풍경’을 다룬 제1부에서 본 ‘학력 담론’이나 ‘내신제’, ‘교육정책의 사회적 풍경’을 살핀 제2부의 ‘학습장치’, ‘교육적 심성의 풍경’을 묘사한 제3부의 ‘교육 수량화’와 ‘교사의 감정노동’ 들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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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시작된 내신제는 “학생의 학교생활 전반을 기록으로 남겨 선발과정에서 사용하는 것”(75쪽)을 가리킨다. 학생기록이 내신제라는 이름으로 입시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27년이었다고 한다. 이 때는 의무 사항이 아니고 준칙이었다. 내신제가 모든 중등학교 입시에서 의무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9년이었다.      


내신제 도입은 하급학교의 입시기관화 방지와 황국신민화한 건강한 군인 양성을 위한 전략적 선택 같은 배경 속에서 이루어졌다. “초등학교 교장의 소견”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분류하여 충량한 황국신민 후보자로 선택하거나 열등한 이등 국민으로 배제할 수 있는 합법적인 틀이었다. 오늘날 교육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내신 관련 논의가 근본적으로 어떤 한계와 모순에 빠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식민성이 지배하는 학교와 학교의 기능을 재편하지 않은 채 도입의 정당성이 논의되는 내신제는 잠재된 폭력성을 ‘합법적’으로 드러내고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중략) 선발을 위한 방법적 전략으로서 내신제는 교육제도가 입시를 중심으로 굳건하게 형성되어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성공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교육이 ‘입시’를 위한 전략적 공간으로 간주되는 한, 내신제를 포함한 많은 입시정책은 제한적인 효과만 지닐 뿐이며, 오히려 새로운 교육개혁에 대한 사고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마저 있다.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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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학교 대부분에서 학년과 학급과 학번은 ‘수’로 표시된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저자가 우리 사회에(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범람하는 ‘평생학습’ 관련 담론과 시스템을 문제시하면서 전제한 몇 가지 태도, 예를 들어 ‘필연적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의 비필연성’, ‘존재하는 것의 선택성’ 측면에서 보면, 학년과 학급과 학번을 나타내는 수는 우연적이고 임의적인 선택의 산물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는 수를 신성시한다. 무미건조하고 감정이 개입되지 않으며, 탈정치적이고 탈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고 간주되는 수는 교육 현장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학생과 교사와 학교의 모든 것을 나타내는 절대 기호처럼 쓰인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문제 의식을 저자는 ‘교육의 수량화와 수의 교육지배’로 표현하여 풀어놓았다. 저자는 교육정책과 관련하여 수의 활용이 학부모의 알 권리와 선택권, 증거 기반의 교육책무성이나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영 관리 기법 등을 주요 특징으로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과 관련되면서 확산되었다고 보았다. 그 결과가 암울하다.     


수량화가 지배하는 학교에서는 교육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가 하는 질문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으로 바뀐다. 개별적이고 질적인 것들이 집합적이고 양적인 것으로 변모한다. 그 결과 교육의 개별성과 인격성은 사라진다. (중략) 비교가 불가능한 질적인 차이와 다양성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교육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다양성과 차이는 병리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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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은 저자가 2000년대 초반부터 2015년까지 교육관련 학회 학술지에 실은 14편의 논문을 단행본에 맞게 다듬어 내놓은 책이다. 그렇다고 문장이나 구성 체제에서 논문집 색깔을 완전히 벗은 것 같지는 않다. 글이 쉽게 읽히지 않은 것을 이에 대한 이유로 내세울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전면에 내세운 1인칭 시점을 바탕으로 이야기처럼 풀어나갔다면 더 많은 이들에게 흥미진진한 독서 경험을 선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점 몇 가지를 제외하면 <풍경>은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현재를 고민하는 이들이 깊은 성찰의 계기로 삼을 만한 테마들을 곳곳에 담아냈다. 학생과 교사 등 학교교육의 핵심 주체들을 옭아매는 시스템과 문화의 근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좋은 학교 풍경은 그 ‘좋음’을 고민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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