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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읽은 자크 랑시에르의 책 <무지한 스승>을 얼마 전 다시 꺼내 들었다. ‘교육자들’이라는 이름의 에스엔에스(SNS) 교사 모임에서 함께 이야기하기로 한 책이었다. 책등을 잡고 책장을 휘리릭 넘기자 책을 읽으며 그은 밑줄들이 곳곳에 보였다. 프랑스 철학자 특유의 은유적인 문장들이 읽기를 자주 멈칫거리게 한 기억과 함께 ‘무지한 스승’이라는 모순적인 책 제목과 내용이 준 충격의 느낌이 새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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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시에르가 ‘무지한 스승’의 모델처럼 묘사하는 인물은 조제프 자코토였다. 1818년 네덜란드 루뱅 대학교 불문학 담당 외국인 강사가 된 48살의 자코토는 네덜란드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프랑스인이었다. 네덜란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언어가 전혀 없었던 그는 어떤 “우연한 실험”을 통해 하나의 정신 혁명을 경험했다. 프랑스어에 완벽하게 무지했던 학생들은 네덜란드어에 ‘무지한 스승’이었던 자코토 아래서 “작가 수준”의 프랑스어를 익혔다!
그 전까지 자코토는 스승의 본질적인 행위가 설명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는 것이 지식을 전달하고 점진적인 순서에 따라 가장 단순한 것에서 가장 복잡한 것으로 학생들의 정신을 이끌어 가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네덜란드 학생들이 “작가 수준”의 프랑스어를 익히게 될 때까지 그는 프랑스어 철자법이나 동사 변화 같은 기본적인 요소들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랑시에르는 자코토가 경험한 정신 혁명을 소개하면서 ‘설명’을 통렬히 비판하였다. 그가 보기에 설명은 교육자의 행위이기에 앞서 교육학이 만든 신화였다. 그것은 세계가 유식한 정신과 무지한 정신, 성숙한 정신과 미숙한 정신, 유능한 자와 무능한 자, 똑똑한 자와 바보 같은 자로 분할되어 있다고 보는, 불평등에 관한 하나의 뿌리 깊은 우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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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학교의 3월은 새 학년 새 학기를 준비하고 맞이하는 교사들의 설렘과 기대와 긴장과 두려움의 감정이 함께하는 것 같다. 교실에 어떤 학생들이 앉아 있을까. 학생들에게 배움을 위한 마음가짐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수업과 생활지도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을까. 폭주하고 진격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통솔해야 하나.
‘무섭고 엄격하게 시작하라.’ 해마다 학생을 새로 맞이하는 교사들은 이 말이 주는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유혹에 넘어간 교사는 이제 근엄한 권위주의자의 표정을 지으며 교실 규칙을 정하고 학생들을 이끄는 무소불위의 지도자가 된다.
‘완벽하게 설계하고 철저한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하라.’ 수업의 달인이 되고 싶거나 최고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싶은 교사들은 빈틈없는 수업을 위해 노심초사한다. 학습 목표를 숙지한 뒤 이에 맞춰 발문이나 질문을 만들고, 예상되는 학생 반응과 답변에 어울리는 완벽한 설명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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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 우리 교사들은 끝없이 노력하고, 선의를 가지고 있다. 다만 일찍이 200년 전 자코토가 경험했고, 랑시에르가 절실하게 알려준 ‘무지한 스승’의 정신을 잠시 고민해 보자. 학생은 교사가 완벽하게 설명하여 이해시켜야 하는 존재이기 전에 나날을 한 공간에서 함께 숨쉬며 살아가는 평등한 사람 벗이다. 그들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우리가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그윽히 눈빛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수백 마디의 설명이 가져오지 못하는 감동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고 본다. ‘무지한 스승’의 역설적인 교훈을 새삼 되새겨보는 3월이다.
* 전교조 신문 <교육희망>(2018년 3월 6일 자)에 실은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