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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Dec 19. 2018

3만 5천 원짜리 책

1


어제 퇴근하여 거실에 들어서면서였다. 손에 들고 간 책 몇 권을 힘겨운 듯 책상 위에 내려 놓으며 한 마디 하였다.     


“아이고, 힘드네.”


아내가 거실로 나오면서 내게 말했다.

 

“치과 안 갔어요?”     


이즈음 나는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정이 연이어 있어서 짬을 내지 못하고 있다. 어제는 몸와 마음 상태가 특별히 좋지 않았다. 도저히 치과 드릴 소리를 들을 기분이 아니어서 진료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 들어섰다.      


“아, 힘들어서 그냥 안 갔어요. 참, 나 책 좀 샀습니다.”     


어깨에서 가방을 벗어 내려 놓으며 조심스럽게 아내 표정을 살폈다.


“얼마 전에도 사지 않았어요?”


아내가 되물었다.


“급하게 챙겨 봐야 할 책들이 있어서.”     


나는 얼버무리며 다시 현관 쪽으로 발을 옮겼다. 경비실에 도착해 있는 택배 물건이 하나 있었다. 문을 열고 나서는데, 아내가 혼잣말인 듯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무슨 책 값이 이렇게 비싸대?”     


짐작컨대 내가 들고 온 책 중 가장 두꺼운 육문사 판 《에밀》을 두고 하는 말일 터였다. 3만 5천 원짜리 책이었다. 순간 궁금했다. 아내는 어떤 이유에서 ‘비싸다’는 단어를 썼을까.     


2     


학생들에게 책을 사 보라고 말할 때마다 수년째 똑같이 들려 오는 대답이 있다.     


“선생님, 책 값이 너무 비싸요.”     


그때마다 나는 똑같은 궁금증이 생긴다. 학생들은 왜 책값이 ‘비싸다’고 말할까.     


3     


30년 전 대학 신입생 시절 산 전공(국어국문학) 개론서들의 판매가는 대체로 1만 원에서 2만 원 사이에 걸쳐 있었던 것 같다. 이 가격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00년대 초‧중반경에 나온 시집들은 대부분 6천 원 안팎 정도 돈이면 살 수 있었다. 지금은 그 가격이 8천 원 수준이다.     


1990년대 전후 짜장면 값은 1000원 내외였다. 지금 짜장면 한 그릇을 사 먹으려면 6천 원에서 7천 원 정도를 내야 한다. 30년 전 내가 학교 앞 분식집에서 500원에 사 먹은 라면 값은 지금 3천 원이 되어 있다. 책값이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사이 짜장면이며 라면 값은 대여섯 배씩 올랐다.     


4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이 죽어 나가는 세상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들 눈에는 이렇게 책값 타령이나 하는 게 한가한 일처럼 비칠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책값이 비싸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을 그렇게 만든,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어떤 불안하고 허술한 틈을 읽는다.      


아내는 침대 머리맡에 엎드려 책 읽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바쁜 직장 일정 때문에 차분하게 책을 읽는 ‘호사’를 거의 누리지 못하다. 교실 수업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약간의 여유와 편안함이 주어지면 얼마든지 각자의 책 읽기에 몰입할 수 있다.      


나는 아내와 학생들이 비싼 책값을 말하는 마음 한켠에 책을 더 편하고 여유 있게 사 읽지 못하는 우리 삶에 대한 불편함이 숨어 있다고 해석하고 싶다. 나아가 그들 모두 책이 비싸든 그렇지 않든 더 사서 읽기를 원한다고 믿고 싶다. 어제 내가 들고 들어 간 육문사 판 《에밀》은 2017년 3월 15일자로 나온 ‘개정 3판 7쇄’본 중 하나였다.     


5     


나는 책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그들이 책을 읽으며 바꾸어 가는 생각과 관계와 삶의 색깔에 따라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3만 5천 원짜리 책값을 두고 벌어진 짤막한 풍경 속에서 한참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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