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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Feb 01. 2019

‘기승전대입’ 국가답다

유감스러운 <스카이 캐슬> 열풍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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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SKY 캐슬 안에서 남편은 왕으로, 제 자식은 천하제일 왕자와 공주로 키우고 싶은 명문가 출신 사모님들의 처절한 욕망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리얼 코믹 풍자극”.


<스카이 캐슬>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TV 검색’ 코너의 <스카이 캐슬> 항목에 이런 ‘소개’ 글이 떠 있다. 뭇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끈 화제의 드라마답게 시청률 추이가 극적이었다. 1회가 방영된 작년 11월 23일 종합 순위 26위(1.727퍼센트)로 시작한 이 드라마는 3회분 방영 때 1위를 거머쥔 뒤(5.186퍼센트) 가파른 상승 곡선을 탔다. 19회(1월 26일 방영) 시청률은 23퍼센트였다.


나는 <스카이 캐슬>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이나 후기가 흥미로웠다. 공식 소개 글에서는 ‘리얼 코믹 풍자극’이라는데, 이곳 페북에 오가는 말들을 보니 추리물처럼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았다. 일부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중심으로 대학 입시 문제를 건드린 사회극처럼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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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추리물이든 사회극이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이나 극의 허구는 개연성 있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되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따라서 드라마에서 어떤 ‘현실’을 본다면 그것을 실제라고 간주하는 것보다 그 진짜 같은 가짜가 핍진하게 그려내려고 한 실제 현실을 냉철하게 조감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스카이 캐슬>에 나오는 ‘입시 코디’가 여러 사람에게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는 뉴스를 보고 조금 놀랐다. 드라마를 보고 사교육업체에 입시 코디에 대한 문의를 했다는 사람들은 ‘스카이 캐슬’ 속 0.1퍼센트의 욕망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럴 만한 능력이 있으니 그렇게 하는 것일 터이므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야 하나.


<스카이 캐슬> 열풍극에 부지런한 코디 문의자들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 근처 낙성대 일대 지하철 역내엔 ‘100% 서울대 선생님’이란 홍보 문구를 내건 사교육 업체 광고가 실렸다고 한다. ‘예서 엄마’ 한서진을 맡은 염정아는 한 사교육 업체의 광고모델이 됐고, 학습효과를 높여준다고 입소문을 탄 1인 전용 스터디룸 ‘예서 책상’은 200만원대라는 높은 가격에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차지하며 날개 돋친 듯 팔렸다고 한다.(<경향신문> 1월 31일 자 기사 “‘입시 문제’ 고발했는데 ‘입시코디’ 물색…민낯 드러낸 교육현실”)


대학입시를 학교교육의 최초이자 최고이자 최종의 목표로 삼는 ‘기승전대입’ 국가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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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입문서로 널리 알려진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에서 키토는 그리스 아테네의 자유인에 관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는 민주주의의 발원지이자 서양 문명의 태동지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그리스가 이룩한 그 찬란한 문명이 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한 노예들의 노동 덕분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키토는 이런 통념과 조금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아테네인이 여가를 누렸던 것은 노예제 덕분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노예제가 어느 정도 기여를 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보다는 그리스인이 우리가 노예같이 일해서 사들이는 물건의 4분의 3은 아예 없이도 잘 살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그리스인은 우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들을 얻으려 애쓰지 않음으로써 여가를 확보했고, 그 시간을 집 밖에서 보냈다. 이를 통해 그리스인은 도시와 농촌에서 동료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자신의 지혜를 가다듬고 행동방식을 개선했다.” [신득렬(2016), 《교양교육》, 겨리, 12쪽에서 재인용]


나는 키토가 강조하려고 한 메시지가 그리스인들의 특별한 생활방식이나 문화였다고 이해한다. 키토는 현대인이 외출을 준비하는 데 1시간 30분이 걸리지만 그리스인들은 단 5분이면 세상과 만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의식이나 이에 따른 삶의 양식이 간소함이나 여가를 중시한 결과 고대 그리스인들이 대화와 사교를 통해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우리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배울 게 있다면 이런 점이 아닐까. 키토의 논급에서 우리 사회의 교양 수준과 방향을 가늠해 보는 일이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불안 사회를 이유 삼아 각자 ‘욕망’과 ‘생존’의 전차에 올라탄 채 만인을 향한 경쟁의 전투를 버리지 않는 한 언제든 제2, 제3의 <스카이 캐슬> 열풍극이 우리를 덮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폭망한 대입 공화국이지 않을까. 이미 그런 세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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