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우리에게 무엇이든 대체할 수 있는 값싼 대용품을 제공해 주는 근대 산업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결국 통조림 음식이 기관총보다 더 치명적인 무기라는 사실을 알게 될지 모른다.”
20세기 초엽 영국인들은 통조림이라는 저질 공장 식품에 광범위하게 노출되면서 체격이 급격하게 저하되고 있었다. 오웰은 특히 청년들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지 못하게 된 현실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전쟁 무기라는 자극적인 비유를 가져왔다.
누군가에게는 통조림이 기관총보다 치명적인 무기가 될 것이라는 오웰의 저 표현이 재기 넘치는 문필가의 수사법 정도로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오웰의 문장을 읽으면서 세기말적 묵시록이 주는 듯한 서늘함을 느꼈다. 그리고 곧 광속으로 진화하는 현대의 인공지능기술과, 그에 따른 인간 노동의 소멸 현상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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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같은 단순 장치 내장 사물 하나로 공기업과 사기업(카드회사)을 이익 결사체로 묶어 놓는 하이패스 시스템이 수납 노동자 수천 명의 삶을 빼앗아 간다. 현대세계가 변화하는 이치가 그러하니 우리는 이를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러나 그렇게 자신의 일을 잃은 노동자들은 한 번 쓰이고 버려지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어떤 사람도 그럴 수 없다. 하지만 무자비한 자본 기계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고 외친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둘 그들의 야멸찬 목소리 아래서 굴종하고 침묵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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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노동자의 삶을 살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노동’이나 ‘노동자’ 같은 말들을 저열하고 모욕적인 단어 목록의 첫 자리에 놓는다. 노동 없이는 하루하루의 삶도, 이 세상도 존재할 수 없다는 자명한 진실을 외면한 채 반노동자 의식, 노조 혐오주의에 깊이 침윤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금부터 83년 전인 1936년 영국 위건 지역 광산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땅 속 깊은 곳에 난 1.5킬로미터의 갱도를 몸을 반으로 접고 기어가듯 걸어야 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들 광부의 노동과 삶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동시대 영국인들이 얼마나 되었을까. 그런데 오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곳 얘기는 안 듣는 게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세계는 지상에 있는 우리의 세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머지 반쪽이다. 아마도 우리가 하는 모든 것, 말하자면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부터 대서양을 건너는 것까지, 빵을 굽는 것부터 소설을 쓰는 것까지, 모든 게 직간접적으로 석탄을 쓰는 것과 상관이 있다. 평화를 위한 모든 수단에 석탄이 필요하며, 전쟁이 터지면 석탄은 더욱 필요해진다. 혁명기에도 광부는 계속 일하러 가야 한다. 아니면 혁명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혁명도 반동도 석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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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도 반동도 교육이 필요하다. 혁명도 반동도 금융사무가 필요하다. 혁명도 반동도 철도가 필요하다. 혁명도 반동도 감정노동이 필요하다. 혁명도 반동도 배달노동이 필요하다. 요컨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노동은 중요하다.
나는 이 땅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을 이렇게 생각할 때 전태일 형이 하늘나라에서 편히 지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상의 ‘전태일’인 우리의 삶 역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