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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Nov 22. 2019

김 선생, 다시 함께하고 싶다

희망을 일구는 학교 민주주의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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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 오래간만이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 우리가 한참 함께하던 그때가 벌써 10년 전이구나. 난 40대 초반, 김 선생은 20대 중반이었지. 


우리는 세상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려고 했던 것 같아. 늦은 밤까지 함께 책을 나눠 읽으며 뜨겁게 공부하고, 그렇게 머리와 가슴에 자리잡은 생각들을 웅장한 언어로 풀어내며 시국의 향방을 짚어보곤 했지.


2


어느 시점부터 김 선생을 보기 힘들어졌어. 아마도 김 선생이 우리가 함께 보낸 지역을 떠나 다른 곳에 있는 학교로 옮겨가게 된 때부터였던 것 같아. 그런 사정이 있으니 우리 만남이 얼마든지 소원해질 수 있겠지. 문제는 김 선생이 우리가 함께 보낸 곳으로 되돌아온 뒤로도 얼굴을 자주 보여주지 않았다는 거야.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언젠가 김 선생을 만났을 때 그랬잖아. 학교와 교육에서 희망을  찾는 일이 점점 힘들다고. 나는 물었지. ‘무슨 일 있어?’ 그 질문에 김 선생은 딱히 구체적인 대답을 내놓지는 않았어. 그즈음 김 선생이 승진 준비를 한다느니, 다른 직종을 알아보겠다느니 하면서 그때까지와는 ‘다른 길’을 모색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어. 


그 때문에 지레 절망을 과장해서 말하는 게 아닐까.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반문을 했다가 분위기가 서먹해질까 봐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어. 그날 우린 엉뚱하게 가족 이야기, 군대 시절 이야기나 하다가 자리를 일어서고 말았지.


3


사람 마음은 참 묘해. 내 가슴 한쪽에는 지금도 솔직히 학교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다는 김 선생 말에 크게 동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그러면서도 나는 그 희망마저 가슴에서 영영 지워 버리면 교사가 어찌 살 수 있을까 싶어.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이 있으니 그거 받는 재미나 느끼며 살면 되나. 여차직하면 승진 라인에 올라타 교감, 교장 자리로 이동해 지내도 되겠고 말이야. 


난 김 선생이 그렇게 희망을 영구 폐기처분하듯 선언하더니, 내게서 시나브로 멀어져 가는 것이 서운했어. 나도 감정 있는 사람이잖아. 한때 같이 뜨겁게 공부하고 현장을 고민하던 후배 동료 교사가 내가 가는 길과 다른 길을 탐색하는 게 마냥 흔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 그렇다고 김 선생을 미워하고 싶지 않아. 나라도 지금 당장 내가 맡은 학교 수업과 업무 외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굴뚝 같거든. 학교를 때려치고 다른 일을 하고 싶은 때도 많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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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 난 어제 낮에 점심밥을 먹은 뒤 여느 때처럼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잠깐 쉬려다가 갑자기 ‘핫팩 실종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그것을 처리하느라 거의 1시간을 매달려야 했어. 아이들이 무심히 빌려주고 빌려 쓴 물건을 자기들 멋대로 돌려 쓰다가 사달이 난 사안이었지. 6명이나 연루되어 대형 사안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심각한 측면은 없었어. 어쨌든 여느 때 보내는 점심참의 잠깐 휴식이 날아가니 몸이 금방 이상해지더라.


늦은 오후에는 학교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사안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데 거의 3시간이 걸렸어. 그런 곳은 교권보호위원들이든, 관련 교사나 학생이나 보호자든 모두가 민감한 자리로 여기기가 십상이어서 극도로 긴장하지. 시시각각 바뀌는 감정과 의식을 통제하는 일도 쉽지 않아. 그런 이들과 함께 3시간여 동안 온몸 신경을 곤두세운 채 이야기를 하고 집에 돌아오니 그냥 다리가 풀리더라. 저녁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침대에 쓰러지고 말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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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이 있는 학교는 어떤지 몰라.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쁘다, 힘들다, 죽겠다 하는 선생님들 말을 들어. 정말 바쁘고 힘들어 죽을 것 같이 지내는 분들이니 그렇게 말하겠지. 그러면 공연히 나까지 바쁘고 힘들어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그런데 가끔은 실제 그렇게 바쁘거나 힘들거나 죽을 듯이 어렵거나 하지 않은데, 그들 스스로 바쁘고 힘들고 죽을 것 같이 자기최면을 거는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어. 바쁘고 힘들고 죽을 것 같이 만드는 환경과 제도를 바꾸자고 할 때, 그들이 대개 그다지 뜨겁게 반응하지 않거든. ‘잘 알지만 우리가 나선다고 뭐가 달라지냐’면서 말야.


그런 말 들을 때는 정말 미치겠어. 오죽하면 내가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게 뭐냐’ 하며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겠어? 하지만 김 선생은 내 성격이나 태도를 잘 알잖아. 그냥 조곤조곤 말하고, 직접 행동으로 옮겨 함께할 것을 넌즈시 종용할 뿐이지.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그들이 내 곁에 와 서 있고, 내가 그들 곁으로 찾아가지게 되더라. 자연스럽게 함께해지게 되더라.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지난 몇 년 사이 함께함이 주는 놀라운 힘의 결과를, 비록 거창하고 화려한 것들은 아니지만, 일상 속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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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 난 요새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정치를 공부하고 있어. 국외 인터넷 서점에 몇만 원을 주고 산 영어 책으로 하고 있지. '정치'라는 말에 특별히 눈길을 주었으면 해. 정치가 한 사회 안의 한정된 자원을 구성원들에게 배분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 들을 조정하는 행위로 정의된다면, 학교야말로 학생과 교사, 교사와 교사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상의 정치가 가장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곳 중 하나가 아닐까. 더구나 그곳은 장래의 국가 인재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 시기에 이 사회 곳곳을 채우며 살아가는 시민을 교육하는 곳이기도 하잖아. 


요새 민주시민교육이 목하 유행하고 있잖아. 민주시민교과를 만드느니, 무슨 시민교육네트워크를 만드느니 하면서 노력들을 하고 있지.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한편으로는 교사들이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수준 있고 품격 높은 학교정치, 교육정치를 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살아있으면서 효과적인 민주시민교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어. 


7


그렇지 않을까. 법과 제도와 관행에 따라 ‘관리되는’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가 주체적인 시민으로 거듭나는 일이 그저 교과 단원 몇 개나 인위적인 학습 활동을 통해서 가능할 것 같지 않아.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펼쳐지는 일을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토론하고 결정하는 일이야말로 살아있는 민주시민교육이지 않을까 싶은 거야. 


지난날 우리가 함께 공부하고 시국을 논하는 힘든 시간을 보낸 이유도 그런 고도의 학교정치, 생활정치를 이루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김 선생, 다시 보고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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