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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r 22. 2020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

토리 헤이든의 《한 아이》(1, 2; 아름드리미디어)를 읽고

1


토리 헤이든의 《한 아이》(1, 2; 아름드리미디어)를 읽었다. 나는 책장 넘어가는 것이 아까워 일부러 시간을 쪼개 책을 들었다 놨다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아프고 화나고 손끝이 떨렸다. 눈물을 흘리고, 책등을 하늘로 향하게 하여 가슴 위에 조용히 책을 얹어 놓은 뒤 눈을 감았다. 서점에서 무심히 집어 든 책 한 권에 이렇게 빠져들 줄 몰랐다.


2


《한 아이》 제1권의 표지에는 “아동교육심리학의 영원한 고전”이라는 부제가 박혀 있다. 정서장애아들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일을 하는 특수교사 저자 토리 헤이든은 유년기를 충격적인 체험 속에서 보낸 쉴라 렌스태드의 이야기를 통해 처절한 고난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성장하고 변해 가는 인간 영혼의 힘을 들려 준다. 보편적인 이야기다. 그리고 아동, 교육, 심리를 하나로 묶으면 인간학이 된다. 그래서 나는 저 부제가 두 권의 책 속에 담긴 인간 보편의 이야기를 좁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쉴라는 4살 때 19살 먹은 엄마에게 고속도로에서 유기를 당했다. 6살에 이웃집 3살짜리 남자아이를 숲으로 끌고 가 나무에 묶고 불을 질렀다. 어린 쉴라는 경찰에 인계돼 수감된 뒤 치료감호소로 가기 전까지 일반학교 특수학급에 임시 위탁 교육생으로 맡겨진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구름 잡듯 아득하기만 한 정서장애아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마법의 열쇠를 찾아내고 싶다는 소망”이 늘 머릿속에 있던 저자 토리 헤이든이 그 학급의 담임 교사였다. 쉴라를 만난 토리는 운명 같은 걸 느낀다.


3


우리는 《한 아이》를 보기에 따라 불굴의 역경 극복기나 인간 승리의 서사시로 정의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식의 정의가 저자의 의도를 크게 왜곡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토리 헤이든은 탁월한 능력과 인간성을 겸비한 슈퍼우먼이 아니었다. 쉴라 렌스태드는 극악무도한 품성을 가진 구제불능의 문제아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평범한 인간들이었다. 그들이 놓인 사회와 환경과 제도가 평범하지 않았을 뿐.


이 책에는 싸우고 울고 질투하고 의심하고 화해하고 함께 기뻐하는 등의 모든 인간적인 감정과 그에 관한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가감없이 묘사되어 있다. 저자가 두 권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시종일관 강조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저는 마음의 병을 앓는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좌절감을 느끼지 않느냐고 묻던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인간의 영혼에 바치는 노래입니다. 이 어린 소녀는 제가 아는 모든 아이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 모두처럼, 그 소녀도 살아남았습니다.” (‘들어가는 말’에서)


4


《한 아이》는 쉴라와 헤이든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교육이나 교직의 의미를 깊이 숙고하게 하는 대목이 아주 많다. 교사나 교육자의 인간관이나 학생관, 이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교육방법과 교육의 결과 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당신이, 친구들이 아끼고 좋아하는 금붕어들을 어항에서 꺼내 날카로운 연필심 끝으로 눈알을 파버리고는 그 몸통을 바닥에 내팽개친 아이의 담임이라면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고 가르치겠는가. 보통의 학교나 교실에서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만나기가 쉽지 않으므로 지나친 경우라고? 그렇다면 교사에게 대들고 욕을 하는 아이들이라면?


5


나는 책을 읽으며 최근 몇 년 새 내 곁에 있다가 떠나간 준, 혁, 난, 민 들을 떠올렸다. 준은 책을 읽기 싫다며 문을 쾅 소리 나게 닫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혁은 수업 시간에 빈정거리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자주 째려보는 아이였다. 지각과 외출을 제멋대로 하던 난은 자초지종을 묻는 내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차가운 표정만 지었다. 민은 어느 날 친구와 다툰 일을 나무라는 내게 비속어를 섞어 가며 참견하지 말라고 괴성을 질렀다.


준, 혁, 난, 민 외에도 나를 아프고 힘들게 했던 여러 아이가 차례로 머리에 떠올랐다. 준이 문을 박차고 나가고, 혁이 빈정거리듯 나를 쳐다보며, 난이 나를 차갑게 외면하고, 민이 내게 욕설을 퍼부을 때 나는 세상 어떤 교사보다 힘들고 아팠다. 진정한 교육은 관계에서 시작되며, 교사인 내가 준과 혁과 난과 민의 태도를 받아들이고 그들이 내게 가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이론적 지침을 갖고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준, 혁, 난, 민의 일을 떠올릴 때마다 숨이 가빴다.


준, 혁, 난, 민은 며칠 몇 주 몇 달이 지나고 학년이 바뀌면서 변했다. 사실은 변했다기보다, 그들이 각자의 감정과 생각이 서로 다른 이유 때문에 폭발한 그 일련의 상황 속에서는 드러낼 수 없었던 내면의 따뜻함과 용기와 진실과 유머를 되찾았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당시 준과 혁과 난과 민은 그럴 만한 구조와 배경과 환경 속에 있었으며, 나는 뒤늦게 그걸 깨달았다.


6


토리는, 항상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쉴라를 향한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나는 나를 힘들고 아프게 하는 주변 사람을 얼마나 믿고 있을까. 그가 영혼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나는 얼마나 자주 느끼고, 또 알려고 할까. 《한 아이》는 내게 한 명의 교사이자 부모로서 갖가지 고민과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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