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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 오 리 길을 오가며 초등학교(옛 국민학교)에 다녔다. 동네 산길을 내려와 논틀밭틀 길을 가로지르고, 징검다리가 놓여 있던 제법 너른 시내를 건너 깔끄막 재 하나를 넘어야 하는 ‘장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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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는 온갖 풀과 꽃과 나무와 짐승과 벌레들이 살고 있었다. 그중에서 내 시선을 호들갑스럽게 잡아 끈 것은, 무섭고 징그러워라, ‘배암’이었다.
학교 오가는 길에 뱀을 만나면 돌부터 쥐었다. 풀과 꽃과 나무와 짐승과 벌레를 싫어하지 않은 촌놈이었지만, 뱀은 그저 무섭고 징그러운 괴물 같았다. 뱀이야 시나브로 제 갈 길을 가던 중이었을 테지만, 내게는 쫓아버려야 할 공포의 대상이었다.
나는 돌을 쥔 손을 공중으로 들어올려 뱀을 향해 힘껏 던졌다. 돌을 던졌다고는 하지만, 뱀을 정교하게 표적 삼아 잡아 족치려는 뜻은 별로 없었다. 녀석이 눈밖으로 사라지고 나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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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는 뱀들 대부분은 특유의 유연한 몸놀림으로 우리 앞을 천천히 스쳐 지났다. 그러다 우리가 인기척이라도 낼랴치면 놀란 몸짓으로 소스라치듯 에스(S) 자 곡선을 그리며 풀숲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대체로 녀석들이 사람인 우리를 무서워하며, 우리에게 적의가 없다는 뜻이었다.
어떤 동무들은 뱀을 뒤쫓아가 기어이 피를 보았다. 대부분이 어른 엄지손가락 굵기의 꽃뱀에 불과했던 낯선 길손들에게 아이들이 던지는 조막만한 돌들은 치명적이었다. 몸통에 돌을 제대로 맞은 뱀들은 몸부림을 치며 처절하게 죽어갔다. 아이들은 그런 뱀을 향해 죽어라고 돌을 던졌다. 마치 뱀이 살아 돌아와 자신들에게 복수라도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나도 그런 아이들 사이에 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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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게 적의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채기 힘든 사람을 자주 만난다. 그때 우리는 그가 내게 적의를 품었을 가능성을 지레 멋대로 가늠하거나, 적의의 자장권 안에서 자신의 태도와 행동 반경을 결정한다.
일련의 정치학자나 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설령 낯 모르는 타인이 내게 적의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일지라도, 내가 먼저 진심 어린 선의를 가지고 대하면 그 또한 선의의 자세로 나에게 호의를 베풀 가능성이 높아진다.(예를 들어 로버트 엑설로드의 ‘팃포탯Tit for Tat’ 전략 참조) 그런데 우리는 그가 적의가 있는지 없는지 알 필요가 별로 없는 경우조차도 그를 적처럼 대한다. 나와 동무들이 무심히 자기 갈 길을 가던 뱀을 향해 돌을 쥐어 던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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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사회(국가, 조직)는 구성원들이 갖는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와 그들 각자가 처한 계급‧계층‧위계 구조 속에서 팽팽한 긴장을 바탕으로 유지된다. 삶의 관심사, 이해관계, 목표가 다르므로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들 사이에서 미시정치가 이루어진다. ‘우리’와 ‘그들’, ‘이쪽’과 ‘저쪽’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생겨 나는 정치적 동학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이분법적 정치 동학이 우리 삶의 전부나 기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명한 한 가지 사실 때문이다. 우리와 그들 모두 피와 뼈와 살과 체온이 있는 ‘사람’이고, 이쪽과 저쪽은 우리와 그들이 사는 삶의 ‘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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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동무들이 학교를 오가던 그 ‘길’은 원래 뱀이 다닌 길이었을지 모른다. 혹은 뱀의 길과 우리의 길은 그저 다를 뿐이었을지도.
* 실물 뱀 사진이 무섭고 징그러워 귀여운 뱀 그림으로 커버 사진 칸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