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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Dec 23. 2020

“제 낯짝 비뚤어진 줄 모르고 거울만 탓한다”

이연주 변호사의《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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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이었다. 사업을 역동적으로 펼친 형님 덕분에 지역 검찰청 검사실에 조서를 받으러 간 적이 있다. 잔뜩 긴장했다가 검찰 조사관에게 비교적 덤덤하게(?) 조사를 받게 되자 ‘검찰 조사 별 거 아니네’ 하며 목에 힘이 들어갔다. 갑자기 검사실 문이 활짝 열렸다. 단정하게 조끼를 겹쳐 입은 검사가 싸늘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교사씩이나 하는 분이 그런 것도 모르고 계세요?” 목 주변에 철없이 퍼지고 있던 힘이 광속도로 분해되었다.


2


2010년대 초반 옛 민주노동당 당우회비 건으로 정치자금법과 정당법 조항 위반에 걸려 기소되었다. 언론에 단군 이래 최대라는 수식이 붙은 송사였다. 전주검찰청에 가서 요식적인 조사를 받고, 법정에서 선고를 받는 날이었다.


구형 순서가 되자 검사가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서 조그만 쪽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정치 따위에는 눈길 한 번 돌리지 않고 학생교육에 전일한 자기 고등학교 시절 은사까지 동원된 구형문학을, 검사가 장엄한 목소리로 구송했다. 함께 법정에 선, 다양한 연령대의 동료 교육자들이 30대 중반의 검사에게 일장 훈시를 받는 격이 되었다. 검시는 법리에 따 구형 결과만 구술하면 되지 않는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검사들의 무변광대한 오지랖에 비릿함을 느꼈다.


3


김웅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검사 시절 《검사내전》을 내서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언론 안팎에서 들려온 평들을 종합해 보자니 책의 방향과 기조가 참신해 인기를 끈 것 같았다. 현직 평검사의 인간적인(?) 이야기를 일반독자들이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니까. 나는 언젠가 한 번 읽어야지 생각하다가 번번이 때를 놓쳤다.


올해 초 김 의원이 검찰을 떠나면서 작금의 검찰 개혁이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포효했다는 보도를 보고 크게 실망했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깨끗이 사라졌다. 나는 그가 검사 시절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 올린 글에서 검찰 개혁의 종착점이 “경찰공화국”이라고 말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속내가 짐작되었다. 그는 ‘검찰공화국’이 약화하는 것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한때 《검사내전》이 장안의 지가를 올리고 있을 때 그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에 내심 뿌듯해 했던 내가 조금 민망했다.


4


검사 출신 이연주 변호사가 쓴 책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의 부제는 “검찰 부패를 국민에게 고발하다”이다. ‘검찰 부패’라니. 신성 제국 검찰 공화국의 최일등 시민이자, 법에 관한 한 무오류의 절대 강자들인 그들에게 1980년대 독재정권 치하 독재자 주구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부패’라는 단어를 결합하다니 너무 식상하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400쪽 가까운 책의 두어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식상이 놀람과 충격을 넘어 두려움과 분노로 이어질 것이라 장담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 때문이다.


(1) “검찰 조직이란 허가받은 범죄단체죠. 검찰의 공기에 부패와 범죄의 포자가 날아다녀요. 일부는 마치 범죄를 저지를 특권이 있는 것처럼 행세해요.” (이연주 변호사의 말; 44쪽)
(2) ‘반드시 보복’, ‘인사 보복’, ‘나중에라도 보복’이라는 것이 상명하복 문화가 지배한 조직에서 불복종에 대한 처벌이다. (법무-필자)연수원의 교재 《수사감각》에 쓰인 문구다. (53쪽)
(3) 검찰이 진짜 마피아와 닮은 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오메르타’라는 침묵의 규율이다. 조직의 비밀을 외부에 발설한 자에게 피의 보복을 하는 것이다. (53쪽)
(4) 검찰에서 옷을 벗고 나오는 검사들은 이프로스에 사직 인사를 올리는데, 이게 바로 변호사 개업 인사다. 사직 인사에 달린 검사들의 댓글을 동판에 새겨 개업한 변호사 사무실에 걸어놓는 양반도 있다. (208쪽)
(5) 기소권과 수사권을 한 손에 쥐고 있기 때문에 수사 위법성을 일차적으로 통제하고, 객관적으로 공소권을 행사하라는 검찰기관으로서의 본래의 기능 역시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조직, 수사 개시부터 기소까지 아무 통제도 없이 전속력으로 마구 달려가는 조직, 게다가 사후적인 감찰 기능까지 무력한 조직, 그래서 검찰은 ‘가학 수사’를 ‘과학 수사’라 우겨대며 살아왔던 것이다.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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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교사씩이나 하는 분이”라고 말한 검사는 양반인지 모른다. 만약 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 장면을 대검찰청 통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이인규, 홍만표, 우병우 전 검사에게 걸렸다면 뼈도 못 추렸을 것 같다. 기소감도 되지 않는 99만 원어치 유흥 접대나 룸살롬 문화를 즐기는 검찰들에 비하면 구형 문학을 손수 준비해 와 구송한 젊은 검사는 미래 검찰의 건강한 꿈나무로 성장할지 모른다.


다만 인간 냄새를 잔뜩 풍기는 검사의 일상 이야기로 한때 신성 검찰 제국 서민들의 눈을 즐겁게 했던 김웅 검사가 날을 잔뜩 세우고 사기극 운운했던 사실을 상기해 보면, 검사들 자신의 거울과 우리 거울에 비친 검사들 모습이 전혀 다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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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울에 검사를 비춰 보면서 실수도 하고 피의자와 인간적인 소회도 주고받을 줄 아는 정의의 사도를 바라지만, 검사들은 절대 무오류의 법신(法神)과도 같은 자화상을 자기 거울 속에 새겨놓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는 이연주 변호사가 쓴 이 책 덕분에 이 나라 검찰 조직과 2200여 명에 이르는 검사 세계의 흉측한 민낯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러시가 작가 니콜라이 고골은 희곡 《검찰관》의 제사(題詞)로 러시아 속담 하나를 새겨 놓았다. 제 낯짝 비뚤어진 줄 모르고 거울만 탓한다. 나는 검찰이 거울을 탓하지 않고 자신들의 민낯을 직시할 때 기꺼이 검찰 편에 설 것이다.


* 이연주(2020),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검찰 부패를 국민에게 고발하다》, 포르세 ∥ 1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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