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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Feb 06. 2021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

《동자동 사람들》(정택진, 2021, 빨간소금)을 읽고

1


서울역 11번 출구를 나와 벽산빌딩(현 게이트웨이타워)을 지나면 동자동 초입이 나온다. 동자동 쪽방촌은, 고층 빌딩들 사이에 자리 잡은 70동의 건물, 1328개의 쪽방에 116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한국 최대 규모의 빈민 밀집 거주 지역이다. 


2


도시 하층 노동자의 일시 거주 지역(1960~1970년대)과, 투기자본의 점령지(1980년대)를 거쳐, IMF 위기 이후 노동시장에서 탈락한 이들의 집단 거주지(1990년대 이후~현재)가 된 동자동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저자는 어슐러 K. 르 귄의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이야기에 빗댔다. 


오멜라스는 행복과 즐거움이 넘치는 도시다. 오멜라스의 구석진 건물 지하실 어두운 벽장 안에는 뼈가 앙상하고 배가 튀어나왔으며 온몸이 배설물로 짓물러진 아이가 있다. 오멜라스 사람들의 행복과 아이의 행복은 공존할 수 없다. 시민의 행복은 반드시 벽장 안에서 고통 받는 아이가 있어야 가능하다. 지금 아이는 동물처럼 신음소리를 내며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오멜라스의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3


동자동 사람들은 갖가지 공적 ‘개입’을 경험한다. 기초생활수급, 실업급여, 기초연금, 근로장려금 등의 공공부조와 복지 시스템, 자립과 자활을 돕는 공공사업, 무연고자 사망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영장례 서비스, 지역봉사단체나 기관, 개인들을 통한 무료물품지원활동과 식사 제공이 이에 해당한다.


저자는 이들 외부의 개입을 단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제도와, 제도 시행의 결과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 제도 적용의 ‘대상’이 아니라 실존적인 ‘인간’으로서 동자동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동자동을 묘사한다. 


돌봄이 자기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진 정영희 씨의 사례나, 교회에서 제공하는 공짜 짜장면을 거부하며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고 외친 박현욱 씨의 이야기는 많은 것은 생각하게 한다. 글쓴이는 이렇게 말한다. 


“빈민에 대한 개입은 삶의 온전함을 경제적 차원으로 환원하면서 사회적 연결과 인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삶의 또 다른 측면을 부정한다.” (254쪽)


4


‘의존적’이라는 말이 긍정적인 맥락에서 쓰이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 연대하고 공존을 통해 가능한 인간 삶의 특징에 비춰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동자동을 향한 외적 개입의 기본 특징은 동자동 사람들이 의존에서 벗어나 독립 상태로 변화하는 것이다. 반면 동자동 주민자조조직은 의존에서 또 다른 형태의 의존으로서의 변화를 목적으로 삼는다. 물품 지원에 대한 일방적 의존은 주민 간의 연대와 상호 돌봄, 즉 긍정적 상호 의존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한다.


5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쿵 부시맨(!Kung Bushmen)에게는 사냥에 성공한 사냥꾼을 모욕하고 비난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한다. 너무 많은 짐승을 잡으면 자기가 추장이나 중요한 사람이 된 것처럼 생각하기 쉬워 언젠가 부족의 누군가를 해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부시맨의 “모욕해야 할 의무”는 불필요한 위계가 형성되지 않도록 방지하고, 이를 통해 성원 간의 동등한 관계에 기반을 둔 공동체를 유지하게 한다.


한국이 오멜라스라면 우리는 벽장 속의 아이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짐승을 많이 잡기 위해 남을 짓밟고 올라설 것을 공공연히 조장하는 시스템 아래서 아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예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6


글쓴이는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따라서 항상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259쪽)라고 말했다. 이 책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고 사람이 부재하는 공간으로 보지 않는 것, 대안을 성급하게 모색하기보다 오멜라스의 시민으로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우리는 타자의 삶을 모르지만 타자가 겪는 고통에 어떤 식으로든지 윤리적으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각자는 다른 사람에게 타자이며, 사람에게 타자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이 책이 주는 교훈이다.


* 정택진(2021), 《동자동 사람들》, 빨간소금,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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