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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네 앞에 가게 세 곳이 새로 생겼다. 세 곳 모두 이즈음 신축한 단충 건물에 나란히 붙어 있다. 한 곳은 반려견 미용실, 다른 한 곳은 실내 포장마차, 또 한 곳은 식료품류를 주로 취급하는 오픈 매장이다.
시차가 약간 있긴 하지만 엇비슷한 시기에 개업한 것 외에, 개업 즈음 코로나19가 재창궐하면서 개장 특수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는 가게들이다. 운동 하러 나갈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가게 분위기가 썰렁했다.
맨 처음 오픈한 실내 포차 가게는 개업 직후 술 손님이 제법 있었다. 최근에는 파리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개 미용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는 더 그랬다. 주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만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몇 번 봤을 뿐이다. 며칠 전 영업을 시작한 오픈 매장 앞은 흔한 바람 인형 하나도 없다. 가게가 풍기는 수수하고 고적한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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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아내 대신 자동차검사를 하러 가는 길에 군산 국가산업공단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파트촌 먹자 골목 근방을 지났다. 영업 일시 중단과 임대를 알리는 종이 쪽지가 출입문에 붙어 있는 가게들이 수다했다. 차를 몰고 지나가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3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고 나서(언제 끝나기는 할까?) 우리가 다시 누리기를 소망하는 ‘일상’을 그려 보았다. 머릿속을 정리하기 힘들었다. 이렇게 말하는 조금 조심스럽지만, 지금 우리는 누구나 힘들다지만 아무나 힘들지는 않고 힘들 만한 사람들만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것 깉다. 그렇게 1년을 지냈 왔다. 모두가 바라는 ‘일상’이 우리 앞에 펼쳐질까.
우리가 살아 온 삶이 있었다. 앞으로 바라고 꿈꾸는 삶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그런 것들에 기대 힘겨운 시간을 부여잡고 꾸역꾸역 앞을 향해 걸어 간다. 그런 것이 평범한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현실의 이런저런 배경과 여건으로 인해 우리가 희망하고 지향하는 것과 다르게 펼쳐질 것 같다. 나는 그렇게 펼쳐지는 삶의 상을, 더는 그리지 못하겠다는 암담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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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얼마 전 치른 학생회 선거 후 처음으로 학생회 운영위원들 중 일부를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 나는 이네들을 지난 한 해 동안 수업을 하면서 교실에서 적지 않게 만났는데, 얼굴의 절반밖에 기억하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각자 고유한 사람을 만나지만, 내가 마주치는 사람은 마스크를 낀 똑같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내 머리와 마음 속 관계 회로에 흐르는 전압이 아예 없었거나 미미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나는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일상에 가져 온 무지막지한 변화의 핵심이 이런 데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더욱 절망스러웠다. 평범한 일상이 우리에게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