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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Sep 24. 2016

“형아가 나 귀엽다고 준 거다요”

사람의 언어 습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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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설은 아이들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언어를 배운다는 이론이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 1904~1990)에게서 비롯되었다. 스키너의 학습설은 심리학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쥐의 학습 행위를 실험하는 장치인 ‘스키너 상자’나 ‘행동주의’와 같은 용어는 심리학 교과서를 장식하는 단골 메뉴가 되었다.


학습설을 신봉하는 이들은 아이들이 언어를 익힐 때 모방이나 반복 연습을 통한 학습 과정을 거친다고 본다. 주변 사람들은 아이들이 언어를 배울 때 모방이나 반복 행동을 좀 더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자극해 주기만 하면 된다. 이런 자극을 ‘강화(强化, reinforcement)’라고 한다. ‘강화’는 어떤 행동을 강하게 할 수 있게 해 주고, 그 행동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한 서너 살 된 아이는 ‘과자’ 대신 ‘까까’라는 단어를 쓸 때가 많다. 아이가 “까까”라고 하면서 과자를 달라고 할 때, 과자를 주지 않고 “‘과자 주세요’라고 해야지” 하고 교정한다. 아이가 “과자 주세요” 하고 말하면 과자를 준다. 계속 “까까”라고 하면 주지 않는다. 아이가 제대로 말을 했을 때 주어지는 ‘과자’, 끝까지 고집을 피웠을 때 받게 되는 ‘야단’이 강화물이다. 스키너는 부모가 어린 아이의 옹알이에 관심을 보이면 옹알이 행동이 강화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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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기에 그럴 듯해 보이는 이 주장은 허술한 데가 있다. 우선 부모의 개입이나 관심이 아이들의 언어 행동을 촉진한다는 뚜렷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 강화 작용으로 아이의 언어 학습(또는 언어 습득)을 이끌기 위해서는 치밀한 사전 계획이 필요하다. 순식간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막무가내의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치밀하게 준비하고 인내심을 갖춘 부모를 찾기란 힘들다. 오히려 실제 현실에서는 아이들의 ‘잘못된’ 말을 듣고 일일이 교정해 주는 일이 어렵다. ‘잘못된’ 말을 할 때마다 일일이 타이르며 학습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부모 말을 따르고 싶어도 부모가 하는 말 자체를 알아들을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말을 ‘배운다’고 말한다. 이때의 ‘배움’은 우리가 보통 쓰는 ‘배움’과 다르다. 아이들은 부모의 열성적인 가르침이나 자신의 성실한 배움이 없더라도 자연스럽게 말을 익힌다. 정상적인 언어 환경에 노출되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


아이들은 상식적인 의미의 배움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을 익힌다. 어른들로부터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을 써서 지적을 받아도 자신만의 문법을 고수하는 경향이 강하다. 언어 습득의 학습설을 무색하게 만드는 증거다.

둘째 아이가 만 세 살을 갓 지난 때였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돌아온 녀석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장난감 기차를 내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빠, 이거 ㅇㅇ이 형아가 귀엽다고 준 거다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응, 그랬구나. 근데 ‘거다요’가 아니라 ‘거예요’야.”


아이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 뒤로도 계속 ‘거다요’를 썼다.


첫째 아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첫째가 ‘거다요’체를 떼는 데 거의 6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둘째에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첫째에게도 나름대로 ‘교정 교육’을 해보았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의 언어 습득 과정은 학습설만으로 온전히 설명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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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모어를 자연스럽게 터득한다. 아이들이 언어를 ‘학습’이 아니라 ‘습득’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학습과 습득은 다르다. 학습에서는 인위적이고 조작적인 환경이 중요하다. 과정이 단계적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 학습을 위해 사전에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그런데 습득에서는 편하게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언어 환경만 조성되어 있으면 된다.


아이에게 문법을 가르친다고 우리말 문장 구조를 알려 주거나 격조사의 기능을 강조하는 부모는 없다. 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은 때가 되어 앉거나 일어서고 걷는 일만큼이나 자연스럽다.


일부 연구자들은 인간의 언어 습득이 어떤 생물학적인 요인의 영향 아래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말을 익히는 모든 아이는 그러한 능력을 타고난 것처럼 보인다.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훌륭한 ‘언어 전문가’가 된다.


‘생득설(生得說)’로 불리는 이러한 관점은,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기술적인 장치가 유전자에 각인돼 있다고 주장한 놈 촘스키(Noam Chomsky)로 대표된다. 그는 아이들의 뇌가 언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화해 있다고 주장했다.


어떤 아이라도 여섯 살 전후가 되면 아주 복잡한 문법 요소가 적용된 문장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줄 안다. 촘스키는 이러한 능력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타고난 언어 프로그램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를 ‘언어 습득 장치(Language Acquisition Device; LAD)’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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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득설이라고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LAD가 머릿속에 실재하는가 하는 점이다. LAD가 실재더라도 그것이 뇌의 특정 부위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뇌 전체에 걸쳐 있는가 하는 점도 촘스키주의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다. 이들 문제에 대해 확실하고 분명한 답을 내놓은 이는 촘스키 자신을 포함해 아직 아무도 없다.


몇몇 연구를 통해 간접적인 증거들이 제시되고 있기는 하다. 영장류 연구 분야에서 나온 증거들이 있다. 그동안 많은 동물심리학자가 사람과 가까운 고릴라나 침팬지에게 말을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성과가 없지 않았으나 영장류가 사람의 언어를 완벽하게 습득한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못했다. 연구자들은 사람의 두뇌 유전자에 존재하는 LAD가 침팬지에게는 없는 데서 그 이유를 찾았다.


언어 능력과 두뇌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신경언어학 분야의 연구 결과도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 뇌의 좌반구가 언어 능력을 관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질병 등의 불가피한 이유 때문에 뇌의 좌반구가 제거된 아이들이 훌륭하게 말을 배워 쓰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이는 뇌의 특정 부위만이 언어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생득설로 불리는 촘스키 이론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의사소통 과정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상황들이 소홀하게 취급된다는 점이다. 언어가 갖는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사람들 사이의 원만한 의사소통에 있다. 그런 점에서 언어 습득은 의사소통에 대한 우리 자신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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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의사소통 요구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언어는 일종의 본능처럼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으로 간주될 뿐이다. 그런데 아기들이 처음으로 말을 배울 때에는 부모와의 소통이 무척 중요하게 작용한다.


돌을 지난 아기들은 먹을거리나 장난감을 얻기 위해 몸짓을 동반한 특정한 소리를 내서 부모의 관심을 끈다. 아기들의 몸짓과 소리에 부모와의 상호 작용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전략적 요구가 담겨 있는 것이다. 사회적인 상호 작용을 언어 습득의 중요한 기제로 보는 이유다.


언어를 습득하는 데 부모와의 상호 작용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다. 부모가 청각 장애인이어서 텔레비전을 통한 언어 자극에만 노출된 아이는 언어를 배우는 데 뚜렷한 한계가 있다고 한다. 이런 아이는 단어를 습득하여 사용하는 일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발음이나 문법은 형편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텔레비전은 아이들과 상호 작용을 할 수 없다. 텔레비전 시청과 같은 ‘일방적인’ 언어 환경 아래에서 언어를 습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사례가 아닐까.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심리학자 프레더릭 스키너다 한국어 <위키피디아>(https://ko.wikipedia.org/wiki/%EB%B2%84%EB%9F%AC%EC%8A%A4_%ED%94%84%EB%A0%88%EB%8D%94%EB%A6%AD_%EC%8A%A4%ED%82%A4%EB%84%88)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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