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문 Oct 14. 2018

상대성과 정석

세상사 다 상대적이야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 5시가 못되었다. 물을 조금 먹고 다시 누웠으나 잠이 다시 오질 않는다. 뒤척이다 일어나 서재로 간다. 그래 시험 보자. 중간고사 기간이다. 켬을 켜고 양택 풍수론 시험을 시작한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마무리하고 시계를 본다. 6시.


중3 둘째를 깨워 같이 집을 나선다. 동네 목욕탕.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사람들이 많지 않다. 온탕에 들어가 앉는다. 온탕 오른쪽에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 샤워도 하지 않고 들어왔는지 머리는 물이 묻지 않은 마른 상태로 2:8 가르마가 선명하다. 그런데 졸고 있다. 고개가 끄떡하더니 어슴푸레 눈을 떴다가 다시 눈을 감는다. 몇 차례 반복한다. 탕에 몸을 담그고 졸고 있네 ㅎ. 저분은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고개를 돌리니 둘째가 온탕보다 조금 미지근한 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눈을 감고 자고 있다. 어이쿠. 내 아들은 아예 자고 있네.


목욕을 마치고 나온다. 시원한 바람이 좋다. 둘째가 바람이 차네 하며 바짝 따라붙는다. 종종걸음으로 둘은 식당을 향한다. 국밥집이다. 둘째가 메뉴를 보고 냉면을 시키자 종업원이 냉면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종업원을 보고 웃는다. 아 여름이 갔구나 하는 생각으로. 종업원이 내 웃는 모습을 보고 왜 웃느냐고 반문한다. 설명하려 다 말고 아니에요 하고 만다. 둘째는 얼큰국밥을 시키고 나는 사골라면을 시킨다. 뒤바뀐 것 같다. 내가 얼큰을 시키는 게 맞을 것 같은데 말이다. 어~ 시원하다고 둘째가 국물을 먹으며 말하면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다.


밑반찬과 공깃밥이 먼저 나왔다. 한 그릇이다. 잠시 후. 종업원이 지나가다 밥이 한 그릇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말한다. 제가 밥 한 그릇만 드렸나요? 그럴 리가 없는데. 잠시 머뭇 하다 말한다.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둘째가 종업원이 가고 나자 말한다. 우리를 의심하는데 ㅎㅎㅎ


음식이 나왔다. 사골라면을 둘째에게 나누어 주고도 밥을 반 그릇 말아먹으니 충분하다. 반쯤 남은 사골라면 국물. 둘째가 얼큰국밥을 열심히 먹다가 내가 내민 국물을 떠먹으며 말한다. 얼큰국밥 국물 먹다가 사골국물 먹으니 하나도 안 맵고 오히려 달콤하네. 아까 처음 사골라면 국물 먹을 때는 맵던데. 그리고 말한다. 아빠, 세상일이 다 상대적인 것 같아. 와우. 뭔가를 깨 달아 버린 것 같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생각났다. 너무 나간다.



마지막 남은 국물을 떠먹기 위해 뚝배기를 살짝 기울여 놓으며 둘째가 말한다. “이게 정석이지. 국물의 정석.” 한 끼 식사를 하며 상대성과 정석을 논하는 둘째. 새벽에 목욕을 같이하고 같이 밥 먹는 이 시간이 나는 하루 어느 때, 일주일 어느 때보다 좋다. 상대적으로 더 좋다.


<세상사, 다 상대적이야. 그러니 정석대로 살아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확신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