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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Jun 25. 2019

열심과 무심 사이

중용의 도

사무실로 돌아가는 지하철. 복잡하진 않지만 빈자리는 없다. 한쪽 출입문  근처에 서서 주위를 살펴본다. 책을 펴 든 사람이 한 사람 보이고 대다수는 스마트폰을 보고 듣고 있다. 그리고 몇 정거장. 70대 후반의 노부부가 탔다.

할아버지, 내가 서있는 라인의 중간에 선다. 앞에는 젊은 처자가 앉아있다. 아마도 가장 잘 양보할 것 같은 사람을 타깃 삼아 그 자리에 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처자. 열심이다. 열심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옆에 포탄이 터져도 아랑곳하지 않을 듯, 탈속의 경지 인양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할아버지, 시선을 끌려고 헛기침도 하고 이리저리 열심히 몸을 움직여도 소용이 없다. 할아버지와 그 처자, 모두 만만치 않다.

그렇게 한 정거장을 지났다. 처자 옆 옆 자리가 하나 비었다. 주위에 서있던 사람들은 선뜻 앉지 않는다.

할아버지, 슥슥 옮겨가서 자리에 앉는다. 할머니,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할아버지, 자리에 앉자 이내 시선이 정면을 본다. 그리고 무심해진다. 무심.

할머니, 할아버지를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다 역시나 하는 듯 시선을 거둔다. 아직 내외를 하는 모양이다.

내릴 때까지 처자는 스마트폰을 열심히. 할아버지는 정면을 무심히, 보고 있다.  다들 그렇게 정말로 열심히, 너무나 무심히 자알 지내는 걸까.

우리가 사는 곳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그 중간 어디일 것이고, 우리네 삶은 스트레스와 무료함 그 사이 어디 일 것이다. 진짜는 너무 열심히도 완전한 무심함도 아닌 그 중간 어디일 것임에, 적당히 쫌... 거시기...

역을 올라와 거리로 나오니 하늘에 무지개가 보인다.


<열심과 무심 사이, 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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