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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Aug 28. 2019

결정적 시기

아들아, 막걸리 니가 사라

새벽 05:20 알람이 울린다. 올해 대학 들어간 아들 방에도 불이 켜졌다. 테니스를 다시 하고 싶다고 하여 다시 레슨을 받기로 한 것이다.


어제 줄을 새로 맨 라켓을 들고 아들과 같이 집을 나선다. 곧 도착한 인근 테니스장, 실로 오랜만이다. 좀 일찍 왔기에 빈 코트에서 공을 같이 쳐본다. 쉽지 않다. 이윽고 6년 전의 레슨 코치가 나타났다.


“와, 많이 컸구나. 언제였지? 중1 때 였다고. 그동안 테니스는 좀 쳤니?”

“아뇨!”


레슨이 시작된다. 헤맨다. 당연하다. 6년을 쉬었는데. 5분을 지켜보다 라켓을 들고 코치가 얘기해준 셀프 자동 연습기로 간다. 아들의 시야를 벗어난다. 다시 5분이 흘러 10분째가 되어 아들을 돌아본다. 자세가 나오기 시작한다. 놀랍다.


또 5분이 흘렀다. 몸놀림이 더욱 좋아진다. 코치는 연달아 “아들, 잘하는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을 느낌으로 안다. 레슨을 다 했을 때 아들은 땀을 흘리며 웃고 있었다. 나에게로 다가오며 말했다. “아빠, 기분 좋아!”


나도 기분이 좋다. 그동안 노력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아들의 노력이 아니라, 나의 노력 말이다. 결정적 시기 전에 가능한 많은 것을 경험해주어 해당 부분의 뇌를 활성화해 주려고 한 노력 말이다.


내가 확인한 뇌 과학이론에 따르면, 뇌가 재구성되기 전인 만 15세 전에 반복하여 숙달하면 해당 뇌 부분이 활성화되어 각인되고 나중에 활용할 때 쉬워진다는 것이다. 중2병은 뇌가 리폼 재구성되고 있는 신호인 것이고.


중3을 마치고 고1이 될 즈음 아들의 뇌는 이렇게 말한다. “테니스 할 때 사용하는 부분을 나중에 주인님께서 쓰시려는 모양이네. 해당 부분을 좀 남겨두어야겠군!”


비교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일종의 Firmware에 담아두는 거지. 그리고 사용하지 않은 뇌 부분을 차후 효용가치를 위해 삭제. 그래서 결정적 시기 이후의 자극들은 휘발성이 강한 software처럼 활성화되었다가 사용하지 않으면 그냥 또 삭제되고 차후 다시 사용하려면 시간이 다시 많이 걸리게 되는 것이고.


어릴 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골프. 나이 들어서 배우니 어찌나 힘들든지. 자세 안 나오고, 잘 늘 지도 않으며, 어느 정도 익혀도 후에 잠시 쉬면 다시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ㅠㅠ.  그래서 나의 골프 실력, 고만고만하고 항상 제자리이며 여전히 어렵다.


<아들아, 막걸리 니가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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