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문 Apr 28. 2016

나는 행복하다

사람들, 그들이 있어 세상은 살만하다.

2016년 4월 25일 월요일 봄 날씨 – 봄에 어울리는 날씨. 월요일이다. 창업 시 TGIF, TGIM 회사를 꿈꿨다.


[Thanks God it’s Friday, 드디어 금요일입니다. 쉬며 재충전하고 가족과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Thanks God it’s Monday, 와우~ 월요일입니다. 일할수 있어 행복합니다.]


창업 후 7년이 지나 그 회사는 접었지만 이 비전은 나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월요일이다. 아는 선배의 호의로 사용하게 된 한 칸의 작은 공간. 나는 출근할 곳이 여전히 있다. 이사하면서 아직은 정리가 덜되어 어수선하지만 어쨌든 나에게 월요일 아침 집을 나서서 갈 곳이 있는 것이다. TGIM.


얼마 전이었다. 급하게 쫓기듯 사무실을 비워주게 되어 심란한 오후.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사장, 혹시 어디 갈 곳이 있어요?” “아니오. 아직, 마땅히 없어 집에 있을까 합니다.” “그래요? 그럼 내가 쓰는 사무실에 자리가 좀 있는데 작지만 오시려요?” 평소 잔잔한 미소와 차분한 성격으로 만나면 위로를 주는 선배. 전화라서 다행이었다. 눈물 머금은 못난 후배 얼굴 보이지 않아서. 학교 후배인지 알지만 여전히 나에게 존대를 하신다. 미안하다며 관리비라도 일부 보태려고 했다. 그냥 있으라 신다. 염치없다. 여력이 생기면 보태야지.


오늘은 25일. 월급날이다. 아니, 회사 월급날이었다. 집에 월급 가져 가 본지가 언제더라? 아내 보기 미안하다. 그래도 힘든 살림 지켜주는 아내. 생각하면 짠하다. 집을 나서는데 지갑을 달랬다. “왜?’ “그냥”. 받아 들자 현금을 넣어준다. “남자는 기갑이 두둑해야 일이 잘되는 거야”라는 말은 듣지 않은 게 나을 뻔했다. 갑자기 시야가 흐려졌기 때문이다. 젠장. 나이가 드니 여성호르몬이 나오는 자연현상 때문이다. 아내의 말 때문은 결코 아니다.


하루는 그렇게 흘러 저녁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지난주 서울 있는 친구가 여기를 오겠다고 연락이 와서 잡은 저녁 약속. 이 먼 곳까지 오는데 밥은 내가 사야 하나? 별게 신경 다 쓰인다. 아마 내 사정 아는 넘이니까, 지가 사겠지? 뭘로 먹지. 왕창 얻어먹어? 웃음이 났다. 인근에 있는 콩나물국밥집으로 정해 장소를 알려주었다.


친구가 왔다. 마포에서 영등포로, 그곳에서 친구 한 명 더 만나 수원역으로 왔고 다시 영통역으로 왔다. 멀리도 왔다.


박성호.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다닌 친구. 명색이 무역과 졸업이라 들어갔던 종합상사. 그도 생각을 같이하여 종합상사로 갔고 그 경험으로 창업하여 한동안 어려운 시절 견뎌 지금은 안정된 상태이다.


손우홍. 같은 과를 나온 친구. 2014년 동기 모임에서 다시 만났다. 그도 최근 어려운 사정이 있음을 들었다. 하얀 피부와 훤칠한 키. 잘생긴 외모에 어울리는 패션감각. 그를 보면 따뜻하고 환한 5월의 봄이 생각난다.


먼저 도착한 식당, 기다리며 막걸리 한 병을 시켜 한잔을 따랐다. 한 모금이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 시원함을 느끼며, 낯설든 서울에서 같은 방에서 하숙할 때 생각하며 웃었다. 웃고 있는 친구와 내 사연을 잘 들어주는 친구 덕에 2시간이 20분 같이 흘렀다. 시간은 결단코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고맙게도 박성호가 계산을 했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거리로 나선 세 사람. 작별인사를 했다.


그때였다. 성호가 봉투를 내밀었다. 어~. 뭐야. 고사했다. 일단 두 번까지는 고사해야 마땅하다. 재촉하는 그들의 말과 눈빛과 몸짓에 받아야 할 상황. 내 자존심 내세운다고 안 받으면 더 모양이 이상해 질 것 같았다. 그들은 떠나갔고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되어 있었다.


대리로 집에 왔다. 봉투를 열어 대리비를 계산하려다 그만두고 지갑을 열어 아내가 준 용돈을 꺼냈다. 호기를 부려 1만 5천 원에 5천을 더해 주었다. 고맙다고 인사하는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의 운 좋은 하루가 되길 빌면서.


다음날 4월 26일 05:15. 젠장. 더 자고 싶은데 자고 싶어도 깨니 짜증이 났다. 아들놈들 잠을 좀 빌렸으면 좋으련만. 시험이 내일모렌데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아들이 부럽다. 방문을 열고 자는 방에 들어가서 깨우려다 그만두고 조용히 나왔다. 방으로 돌아와 어제 입은 옷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두툼하다. 열었더니 5만 원권이 가득 들어있었다. 너무 많다. 수백만 원이나 되었다. 아, 눈에 눈물이 날려는 것을 애써 참으니 참아진다. 어제는 정말 운수 좋은 날이었다. 오늘도 운수 좋은 날, 행복한 날이 될 것이다. 친구 한 명에게 ‘좋은 하루 되어라 나는 벌써 좋은 하루다~’라고 문자 보내고 웃었다.


오늘은 좋은 하루고, 여전히 나는 행복하다. 내가 그렇게 결정해 버렸다.



작가의 이전글 피아식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