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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May 06. 2016

어린이날 풍경

낚시이야기

지난가을부터 낚시하고 싶다고 노래하던 둘째를 위해 어린이날에 인천 바다낚시를 지난 월요일 예약했다. 어린이날 무료체험 덕에 돈을 아꼈다. 예약하고 나자 비바람이 몰아치는 통에 배가 출항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어린이 날. 다행히 걱정이 무색할 만큼 날씨는 화창하고 바람은 낮았다. 날이 날이라 영동고속도로가 막힐 것을 대비해서 많이 일찍 출발했는데 막히지 않고 평상 시보다 좋은 길에 1시간에 와버렸다. 둘째에게 “일찍은 항상 늦음보다 좋다”고 영어로 말했는데 제대로 해석한다. 똑똑한 넘. 누굴 닮았을까 하며 웃었다.


예상밖에 주어진 2시간을 근처 연안부두에서 보내다 식당에 가서 좀 이른 점심을 먹었다. 갈치조림. 첫째도 좋아하게 되었으나 둘째는 아직인 모양인데 참아주며 메뉴에 동참했다. 맛나게 먹고 나오며 계산하는데 주인아저씨가 물었다. 바다낚시 갈 거냐고? 그렇다고 하자 오늘 새벽과 아침에 인근에 있는 배는 아마도 다 나간 모양인데 고기를 싹쓸이해서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고 농담을 했다. 둘째가 울상을 했다. 아저씨가 농담한 것이라 말해주었지만 어쨌든 찜찜했다.


배는 생각보다 컸고 40여 명의 가족동반 초보 낚시꾼들을 태우고 오후 1시 정시에 출항했다. 날씨는 여전히 따뜻하고 맑았으며 바람이 여전히 낮았다. 고기 낚아 담을 큰 통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둘째가 우리도 담을 통 준비할 것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하며 딴청을 부렸다.


인천항 연안부두에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팔미도 인근. 선장의 신호로 시작된 낚시. 부저를 울리면 낚시를 시작하고 다시 부저를 올리면 낚시를 거두어 이동하기를 반복했다. 1시간째 반복했지만 아무도 낚지 못했다. 잠시 지루해질 틈에 선실 안 주방에 있던 아주머니에게 라면 3개를 주문해서 먹었다. 컵라면이 아니라 끓여주는 라면이다. 역시 같은 음식도 때와 장소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우리 모두, 국물 한 방울까지 먹어 치웠다. 그 후 다시 1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배에서 그 누구도 고기를 낚았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낚시를 거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1. 선상 탐험. 배가 좀 큰 편이라 선실 위에 마련된 벤치가 있었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았고 첫째와 올라가서 한껏 바다 구경의 낭만을 즐겼다. 5시간 동안 그곳에 관심을 갖는 이는 우리를 빼고 1 가족이 더 있었을 뿐이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즐긴다.

#2. 왼쪽에 있는 30대 후반의 남자. 7살 정도의 아들을 데리고 낚시체험을 온 모양이었다. 처음 하는 7살 초보 낚시꾼이 서툰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아빠는 못하고 서툰 것을 참아내지 못했다. 야단하고 나무라고 소리쳤다. 아이는 얼굴에 주눅이 들었고 벌써 낚시에 대한 재미는 사라진 것 같았다. 어린이날, 그는 낚시가 재미 없어지는 날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초등 딸과 중등 아들을 데리고 온 40대 중반의 남자. 선글라스에 강한 인상이 낚시 꽤나 한 듯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서튼 중등 아들을 참아내지 못한다. 낚시 중에 서로 낚싯줄이 엉키자 크게 소리친다. “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 중등 아들이 나를 힐끔 보다 시선을 거둔다. 나도시선을 돌렸다. 보기 미안하다. 그도 낚시가 즐겁지 않은 모양이다.


#4. 멀미가 있는 첫째를 데리고 선실로 들어갔다. 침상이 양쪽으로 나지막이 설치되어 있는 곳에 공간을 찾아 뉘었다. 그 옆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아이가 새우 모양으로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자는 듯했다. 그도 멀미 때문인 모양이다. 잠시 후 둘째에게 가려고 나가려는데, 30대 초반의 남자가 들어오며 그 아이를 화들짝 두들겨 깨운다. 옆에 얼음 얼린 작은 물병이 넘어져서 물이 흐른 것을 가리키며 화를 낸다. 아이는 아빠가 왜 그렇게 화를 내고 소리치는지 알 수가 없는 표정이다. 나도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궁금증이 더하여 짐짓 딴짓을 하며 지켜보았다. 큰 물병을 확 쏟은 것도 아니고 잠자다 옆에 있던 것이 배의 흔들림에 넘어져서 녹은 물이 흘렀을 뿐이데 그것 가지고 화를 내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고기 낚이지 않는다는 화풀이인가? 그래도 하물며 어린이날이 아닌가? 그 아이를 위해 오늘을 계획했던 터일진대, 멀미 때문에 누워있던 아이를 갑자기 깨워 야단하다니. 내가 나서서 아이를 변호해 줄려고 일어나다 머리 위에 있던 나무에 머리를 부딪혀 그만두었다.


오후 4시 20분. 선장이 선내 방송을 했다. "오늘 고기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나 봅니다. 며칠 바람이 심해서 바다가 뒤집어져서 고기들이 모두 피신한 모양이네요".라며 좀 일찍 귀선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60대의 선장은 출항 전에 오늘의 이 사태를 예견했으리라. 그래도 출항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예약을 미리하고 잔뜩 기대하며 가족 단위 몰린 낚시꾼들에게 날씨가 좋지만 오늘 고기 잡을 물 때 아니라고 취소는 할 수 없으리라 하고 이해해 버렸다.


실망한 둘째가 배에서 내리면서 한마디 했다. “아빠, 다음엔 가두리 좌대낚시 가자!” “그래그래” “오늘 고기 한마디로 못 잡아서 실망했지?” “응, 그래도 바다에서 먹은 라면은 정말 맛이 좋았어. 데려와 줘서 고마워 아빠” 이 한마디에 오늘 수고에 대한 보상을 나는 다 받았다. 근데, 낚시와 나는 인연이 별로 없나 보다.


<여러분, 어린이날은 잘 들 보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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