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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May 18. 2016

내가 기억하는 1987년

한강 ‘소년이 온다’를 읽고

2014년 12월 26일 금요일이었다. 그날 이 책을 읽고 쓴 일기를 다시 찾아 읽으며 여기 옮긴다. 여전히 가슴 아리다. 2016년, 오늘이 5월 18일이라 더욱 그러하다.


2014. 12. 26. 날씨:춥다.

한강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한강,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된 작가다. 여러 매체에서 2014년 올해의 책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궁금했다. 어떤 내용일까, 어떻게 그때를 기록했을까?


16살, 중학생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주인공이름이 아들 이름과 같아서인지 단숨에 읽었다. 눈물이 났다. 그냥 인간의 처절한 고통에 눈물이 났다. 이어 87년 6월이 생각났다. 87년 대학 들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처음 알았다. 당황했던 기억이 아팠다. 더 이상 최루탄은 남일이 아니었고, 친구 한 명은 최루탄에 손가락을 잃었으며, 또 다른 친구는 강제 징집되어 전경으로 근무하다 위로 휴가로 만났다. 이번에 반대편에서 전경으로 데모 진압 선두에 내몰렸다가 화염병에 화상으로 위로휴가차 나왔다고 했다. 학교 북문에서 소위 ‘채증’으로 찍힌 사진으로 나도 잠시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아찔하다.


그 해 학교에서 단체로 버스를 타고 ‘학교 간 문화교류’라는 명목으로 광주를 방문했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낙후되었던 도시의 풍광들 이었다. 분명한 차별을 보았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2004년 업무 차 다시 찾은 광주에서 여전히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차별을 통해 차이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이념의 이름으로 공고해졌다. 타고 갔던 영호남을 잇는 88 올림픽을 기념해 건설한 88 고속도로는 분리대가 없는 왕복 2차선 도로로 고속도로로 표기되어 교통사고의 위험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었다. 다니지 말라고 건설한 것 같다.


기억과 기록 속에만 존재하는 것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현재로 불러내었고, 현실에 엄연히 실재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 사건을 기억하지 않으려는 자와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아파하는 자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혼란한 그때, 정권 탈취를 합법화할 목적으로 확실한 구실이 필요했던 신군부는 손쉬운 공공의 적인 ‘빨갱이’가 필요했고, 한 도시를 목표로 삼았으며 여차하면 공군의 공습으로 도시 전체를 폭파까지 할 계획하에 ‘작전’을 시작했었다. 그 작전 속에서 스스로 더 잔인해진 자가 있었고 억울하게 고통 속에 죽어간 자가 있었으며, 살았으되 괴로운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게 된 자가 있었다. 계엄군 중에 총구를 위로하여 쏜 자가 또한 있었다.


1987년 연말이었다. 87년 6월 민주화로 직선 쟁취한 그 해 말이었다. KAL기 폭파라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대통령 선거 2주 전이었다. 그 후 여론조사 2위를 달리던 귀가 유달리 큰 보통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KAL기 폭파범이라는 김현희는 안기부 직원과 결혼하여 현재 대한민국에서 잘 살고 있다.


2014년 연말이다. ‘종북’ 이념이 신문 방송에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내가 기억하는 1987년과 무엇이 바뀌었을까?.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으로 인해 박해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한 ‘볼테르’의 말이 많이 섹시해 보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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