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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Dec 05. 2016

이순신

그는 살아 숨쉬고 있었다.

이순신 동상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희망이 없던 사람이었다. 이겨도 죽어야 했고 져도 죽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70대 초반의 어르신 두 명이 ‘박근혜 즉각퇴진” 카드를 들고 서로 기념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세대적 한계가 깨어지고 있었다.


60대 중반의 남자가 “여기 모인 사람들 다 빨갱이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러자 한가족의 가장으로 보이는 40대 초반의 남자가 “우리도 빨갱이다. 우리도 빨갱이. 우리도 빨갱이”를 외치자 가족이 따라 했고 주위 여러 명이 합세해 따라 외쳤다. 60대 그 남자는 뒤돌아 도망가 버렸다. 주홍글씨로 작동했던 빨갱이란 단어는 이제 시민권을 얻어 안전한 단어가 되어 있었다.


엄마 아빠를 따라온 5~6살쯤으로 보이는 꼬마가 촛불을 두 개를 들고 연단을 정신없이 바라보며 구호를 따라 촛불을 들었다 내렸다고 하고 있었다. 80년대 살벌했던 데모가 이제 꼬마도 참가하는 평화로운 시위가 되어 있었다.


수능을 치른 여고생으로 보이는 2명이 연단에서 외치는 구호를 처음에는 어색하고 작게 따라 하다 점점 크게 따라 외치고 있었다. 어색한 외계인에서 지구인이 되어 돌아와 있었다.


행진이 시작되자 횃불을 든 30대 후반의 남자가 횃불대를 높이 들자 와~하며 함성이 따랐다. 촛불이 횃불로 커져가고 있었다.


더 많아진 사람들에 안도하며 그만 돌아가고 싶었다. 일어나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너무 많은 인파로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자체가 행진이 되어버렸다.


<저녁은 또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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