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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Jul 25. 2019

Where the Crawdads Sing

가재가 노래하는 곳 by Delia Owens

“가재가 노래하는 곳으로 가거라. 숲 속 깊이 들어가 야생 사슴을 찾아봐.”


작가 델리아 오웬스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자연을 더 가까이에서 탐험해 보라며 이런말을 듣곤 했다. 작가는 어머니로부터 어떻게 하면 뱀을 밟지 않고 야생을 누릴 수 있는지도 배웠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애초에 뱀을 겁내지 않아야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책을 단숨에 다 읽었다. 카야의 절절한 외로움에 가슴 아팠고 위태로운 사랑을 지켜보며 분개했다. 노스 캐롤라이나 해변의 깊은 습지를 누비는 갈매기, 왜가리들의 날개 짓, 늪을 채우는 풀과 나무들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났다. 습지의 생물들은 카야의 유일한 친구였다. 지난 며칠간 카야와 함께 습지를 누볐고 그녀의 경이로운 삶이 나를 매료시켰다.


여섯 살 무렵 카야의 엄마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떠났다. 엄마가 사라지자 카야의 언니와 오빠들도 하나둘 사라졌다. 카야는 혼자 고기잡이배를 끌고 바다로 나갔다. 거기서 테이트를 만났다. 곱슬곱슬한 금발머리가 빨간 야구모자 밑으로 살짝 보이던 선한 미소의 남자. 두 살 위 조디 오빠 또래로 보였다. 그는 카야에게 대백로(Great Blue Heron)의 눈썹 깃털, 열대조의 꼬리털, 칠면조의 줄무니 꼬리털을 주었다. 모두 구하기 힘든 희귀하고 아름다운 깃털들이었다. 카야가 깃털에 반응을 보이자 테이트는 숲속 공터 그루터기에 깃털대신 짧은 쪽지를 남겨놓았다.


카야는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아니 가지 않았다. 행정담당자의 손에 이끌려 학교에 갔으나 친구들로부터 경멸의 시선과 따돌림의 경험하고 다시는 가지 않았다. 글을 읽지 못하는 카야를 위해 테이트는 글 읽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카야는 빠르게 글을 깨우쳤고 테이트가 가져다준 생태학자의 책까지 읽게 되었다.


“You can read, Kya. There will never be a time again when you can’t read.”

“It ain't just that.” She spoke almost in a whisper. “I wadn’t aware that words could hold so much. I didn’t know a sentence could be so full.”

He smiled. “That’s a very good sentence. Not all words hold that much.”

(“카야, 넌 읽을 수 있어. 이제 읽을 수 없는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그게 다가 아니야.” 그녀는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단어들이 그토록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지 몰랐어. 문장이 그렇게 풍성할 수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고.” 테이트는 웃었다. “그거 정말 좋은 문장인데. 모든 단어들이 그만큼 많은 걸 담는 건 아니거든.”)


카야는 습지의 생물들을 전문가 못지않은 눈으로 관찰해왔고 그것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컬렉션을 만들어 보관하고 있었다. 카야는 알고 있었을까. 테이트가 15살의 카야에게 생일선물로 주었던 물감과 다양한 크기의 붓들, 그리고 중고 웹스터 사전이 자신을 작가로 키워낸 동력이었다는 것을. 카야는 이제 자신을 표현할 도구를 모두 갖추었고 작은 판잣집 앞에 펼쳐진 드넓은 습지가 그녀만의 생태연구소였다.


테이트가 글을 가르친 것은 문맹을 벗어나는 것 같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카야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것이었다. 카야는 대자연의 언어뿐만 아니라 인간 언어가 주는 아름다움까지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나는 카야의 삶을 다 읽고 난 후 그녀야말로 진정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를 끝까지 사랑해준 테이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테이트는 카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채워주었다. 글을 가르쳤고 나중에는 습지 생물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어린 카야의 마음에 잠시 첫사랑의 쓰라린 기억을 남겼지만 결국 그녀를 향한 사랑을 끝까지 지켰다. 세상이 카야를 비웃었을 때 테이트는 카야의 진짜 아름다움을 알아보았고 카야의 숨은 가치를 끌어내주었다. 카야에게 테이트는 습지처럼 빛과 같은 존재였다.


‘Marsh is not swamp. Marsh is a space of light, where grass grows in water, and water flows into the sky. Slow-moving creeks wander, carrying the orb of the sun with them to the sea, and long-legged birds lift with unexpected grace-as though not built to fly-against the roar of a thousand snow geese.’

(습지는 늪이 아니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물속에 풀이 자라고 물은 하늘로 흐른다. 실개천이 느릿하게 배회하며 둥근 태양을 바다로 나르고, 수천마리 흰기러기들의 울음소리를 뒤로 한 채, 다리가 긴 새들이 날아오른다. 날지 못할 것처럼, 하지만 뜻밖의 기품을 자랑하면서.)




델리아 오웬이 이끄는 습지 여행은 슬픔과 경이로움,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건장한 미남 청년 체이스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카야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변호사 톰 밀튼은 배심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법정장면은 읽기가 아까워 잠시 멈추기까지 했다.



6월에 나는 에세이쓰기 강좌를 들었다. 글을 잘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보려고 모니터 앞에 앉으면 머릿속이 흐릿해지고 막막했다. 나는 글이 되는 과정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글쓰기의 기본인 문장과 문단부터 소재와 주제 잡기, 글의 구성, 비유와 상징 등등 글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글을 구성하는 요소를 많이 아는 것과 좋은 글을 완성해내는 것은 별개였다. 결국 써봐야 배운 것들이 의미하는 것을 알 것 같았다. 수강생들은 매주 목요일 자정까지 과제 글을 메일로 보냈고 토요일 수업 때 모여 피드백을 받았다. 선생님은 초보자의 글을 꼼꼼히 읽고 코멘트를 달아주셨다. 문장을 다듬는 법, 밀도 있는 글이 되기 위해 버려야할 것이 무엇인지도 배웠다. 아주 드물게 내 글에 들어있던 좋은 문장이나 생각에 대한 칭찬도 들었으나 대부분은 더 좋은 글이 되라는 채찍이었다. 8주가 지나고 선생님이 연필로 깨알같이 적은 메모들이 쌓였다. 수정된 글과 함께 건네주시던 선생님의 코멘트는 지금도 또렷이 내 기억에 남아있다.


수업을 마칠 무렵 선생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조언을 남겨주셨다.


“내 수업으로 기초를 닦았으니 이제 곰처럼 쓰는 일만 남았어요. 글을 잘 쓰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요. 계속 쓰세요. “


미국의 깊은 남부의 습지 여행을 마치고 나올 무렵 나는 이런 결심을 했다. 곰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고. 햇빛을 보지 않고 마늘과 쑥으로만 버티던 곰은 사람이 되었지. 이제 곰처럼 시간을 기다리며 참고 써보자.


Kya(카야)- 습지 소녀(The Marsh Girl)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Go as far as you can-way out yonder where the crawdads sing.”

“Just means far in the bush where critters are wild, still behaving like critters.”

(최대한 멀리 가라. 가재가 노래하는 저 멀리로. 숲속 깊은 곳,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있는 곳으로 말이야.)


두려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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