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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Nov 16. 2020

사계절의 순환

곧 겨울이 찾아옵니다

사계절이 다 있는 이번주 날씨.. 수목금 많은 비 옵니다.
 (2020. 11.16 /한겨레신문)


그리고 주말부터 기온이 뚝떨어져 초겨울 날씨가 된다고 기사에 적혀있었다. 지난 주말에 낮기온이 거의 20도까지 올라서 두꺼운 외투를 벗은 것은 물론 팔을 걷어올리고 있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햇살이 하루종일 비춰서 낮에는 에어컨을 틀고 싶을 정도였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다가 잠시 에어컨을 켜기도 했다. 햇볕을 가리려고 블라인드를 끝까지 내리고 있었다.


이제 곧 겨울이 시작되는데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집을 나설때마다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옷을 고른다. 네이버에서 날씨를 체크하지만 미덥지가 않다. 기온만 보면 가을 날씨지만 머플러와 장갑까지 챙길 때도 있다. 때로는 과한 옷차림에 머쓱해질 때도 있지만  어느 날은 바람이 너무 매서워서 더 두꺼운 옷을 입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최근 며칠간은 사계절을 모두 살아온 기분이 든다.


아침에 지인의 카톡을 하나 받았다. 오랜만이네요... 로 시작하는 걸 보니 안부를 묻는 것 같았다.  북클럽 회원 중 한명에서 온 카톡이었다. 오랫동안 모임에 나가지 않고 있어서 카톡을 열어보지 않고도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이 되었다. 독서모임이었지만 모임의 성격에서 점점 달라지면서 나는 한동안 발걸을을 끊고 있다.


북클럽은 내가 처음 만들었다. 책선정부터 커리큘럼, 진행방식까지 모두 내가 정했다. 그 방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5년을 넘게 한자리에 모여서 책을 읽고 토론했다.


책을 좋아하는 중년 여성들이 뭉쳤다는 사실 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는 공을 들여 책을 선정하고 한달에 한번 있는 모임준비를 했다. 우리는 영어 소설을 읽었다. 회원본인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좋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책을 읽고 모임을 갖고 나면 뭔가 해냈다는 충족감이 찾아왔다. 엄마로서 혹은 아내로서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한달에 한번 갖는 북클럽 모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음에 읽을 책을 선정하며 이 책을 읽고 얼마나 다양한 생각들을 들을 수 있을까 기대감에 나또한 행복했다. 퇴근 후 북클럽 회원들을 만나러 가는 금요일은 마치 불금에  이태원 클럽이라도 가듯 들뜬 기분이 들었다. 혹은 벚꽃 구경이라고 나가는 청춘처럼.

감사하게도  모임의 장소를 마련해주던 능력있는 회원도 있었다. 장소 걱정없이 밤 늦도록 책에 대해서 토론할 수 있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긴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때도 책을 못읽어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다수가 열정적으로 책을 읽었기 때문에 소수의 불성실함은 조용히 묻혔다.


그러나 나태함은 전염되는 걸까.

책을 못 읽고 모임에 나오는 회원들이 점차 늘어났다. 모두 각자의 이유가 있었고 그때마다 그럴 수 있다고 위로해 주었다. 엄마이자 아내로 사는게 쉽지 않다고. 그러나 한여름 무더위가 모두를 지치고 무력하게 하듯 나 또한 그들 안에서 점차 지쳐갔다.

불쾌지수는 높아만갔다. 눅눅하고 무기력한 여름을 지나는 것처럼 나른한 이야기들로 모임의 시간이 채워졌다. 이제 책을 읽지 못한 이유를 굳이 들을 필요도 없었다. 책은 관심 밖으로 멀어졌고 서로의 안부와 아이들의 근황을 주고받기에 바빴다.


나는 실망감을 드러내지 못한채 오랜시간 모임을 지속했다. 모임이 끝날 시간이 가까워지면 나는 밖으로 나가 차가운 바람을 쐬고 싶어졌다. 무거운 공기에서 벗어나 혼자 길을 걷고 싶었다.


그리고 올 해 초 과감하게 단체카톡방에 글을 남겼다. 당분간 모임에 가지 않겠다고. 회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진심을 절반만 드러냈다. 그리고 조용히  그들과 함께한 시간을 돌이켜 보며 답글을 기다렸다.


아무도 답글을 올리지 않았다. 카톡방에 갑자기 겨울이 찾아온 것 같았다. 내가 끼엊은 찬물이 그대로 얼어버린 듯 했다.  그들의 무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잠시 어리둥절했다. 수년간 함께한 북클럽에서 나의 존재란 무엇인지 돌아보았다. 며칠간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다시금 마음을 추슬렀다. 겨울을 무사히 견디기 위해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처럼 나도 동면에 들어갔다고 생각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다 오늘 갑작스런 카톡이 온 것이다. 회원들과 함께했던 북클럽의 사계절이 빠르게 스쳐갔다. 나는 잠시 회원들 한 명 한 명을 생각했다.


변덕스런 날씨에 종지부를 끊는 것은 언제나 비였다. 오늘 날씨 예보에서도 가을비가 내리고나면 겨울 추위가 찾아올 거라고 전망했다. 계절의 변곡점에서 어김없이 내리는 비가 이제 곧 추위를 몰고올거라고 예보했지만 그건 비 때문이 아니다. 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그렇듯 순리를 따르게 마련이다. 이제 그럴 때가 된 것이다. 비가 와도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또 흘러갈 것이다. 나는 잠시 혼란스런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책상에 앉을 것이다. 카톡에 잠시 눈길을 빼앗겼던 그 책장 페이지로 다시 돌아가 있을 것이다. 비가 오고 추위가 찾아오고 긴 겨울이 시작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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