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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uda Dec 05. 2019

이별은 자리다

잠시는 허전함의 반대말이다

그가 왔다 갔다
잠시
그가 머물렀던 자리가 느껴진다
허전함


잠시라는 말.
허전함이라는 말.
너무나도 상대적인 이 말들의 무게감..
난 이제 잠시의 반대말은 허전함이라 할 것 같다

이별은 자리로 느껴진다
그가 떠나고 청소를 했다
욕실에 짧은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다
머리카락만큼 그 사람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게 하는 것이 있을까
바닥에 떨어진, 손으로 잡기도 어려운 짧은 머리카락 몇 개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그냥 그렇게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가 머문 자리마다 그의 향기가 느껴진다
소파에 앉아서
부엌 바닥에 서서
침대에 누워서
그냥 그의 자리를 느끼며 청소 아닌 청소를 했다
그래서 평소보다 몇 배는 길었던 청소 시간이었다

그가 이 그림 몇 개를 가져갔다
그림이 놓였던 자리
그냥 단지 놓여만 있었던 그림이었다
거기에도 얇게 덮인 먼지 사이로 그림이 두고 간 자취가 있었다

떠난 자리
떠나는 자리
떠날 자리

자리라는 말..
떠나는 말 뒤에 붙여도
떠날 말 뒤에 붙여도
어색하다
자리는
떠난이라는 말 뒤가 가장 잘 어울린다
이별하는 순간은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만
이별한 후에는 가슴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래서 이별은
과거라는 말과 함께 가슴 저 깊숙한 곳에 사는 건가 보다
그래서 이별은
꺼낼 때도 아프고 다시 넣어 둘 때도 아픈 가 보다
그래서 어떤 이별은
너무 아파 꺼내지도 못하기도 하고
꺼냈다가 다시 넣지 못하기도 하고
그러는 건가 보다

8월에 그가 다시 온다고 했다
이별이라는 말이 공간과 어울린다면
만남은 시간이 어울리는 말이다

만난 날
만나는 날
만날 날
만남은 시간과 어울려 늘 가슴에 설렘을 갖게 한다
만남은 과거보다는 현재가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즐거운 말이다
만남이라는 말 뒤에 자리를 붙이면 왠지 격식이 느껴진다. 마치 상견례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신기하다
말 하나에 이렇게 많은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는 것이..

난 그가 떠난 자리에서 그와 만날 시간을 기다린다
현재 속에서 과거를 살아나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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