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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uda Dec 02. 2019

다락방                        

나는 어떤 인간인가.’

 매일은 아니지만 지갑 속에 항상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가끔씩 꺼내보는 가족사진처럼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곤 한다. 그러나 막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면 시험공부 안 하고 시험지를 대하고 있는 학생처럼 막막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인생을 돌아볼 때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단어가 있는데 그건 바로 다락방이다. 우리 집 안방 안의 이층 다락방. 벽에는 수많은 기사와 광고들이 시간을 잃어버린 채 붙어 있었고, 미처 사용되지 못한 물건들, 아주 오래된 낡은 책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은 아닌 주인 없는 일기장 등 서로 같이 있을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 물건들이 뒤엉켜 있는 어딘가 마법 같은 곳이었다. 다락방은 어린 시절 내가 최고로 좋아했던 공간으로 그곳에 있으면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소리들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왠지 그냥 이해가 간다고 할까. 다락방은 바로 어린 시절 나의 집이었다. 그런데 그런 다락방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서는 선생님의 질문에 거의 모든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고 “저요! 저요!”를 외치기 때문에 담임선생님께서는 돌아가며 한쪽씩 국어책 읽기를 시키셨다. 맨 앞줄의 아이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 아직 내 차례가 아님에도 내가 읽을 쪽을 펴 놓고 기다렸는데 이상하게도 매번 내가 읽을 분량은 한쪽이 채 못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내 앞의 아이가 남은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가 읽을 분량까지 다 읽고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닌가. 난 그 아이가 너무 얄미워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 후로 그 아이는 몇 번을 더 내 눈에 눈물을 흘리게 했고 나는 나를 불쌍히 여기는 친구들과 함께 그 아이를 외톨이로 만들었다. 학년이 올라가서 어느덧 우리는 선생님께서 책 읽는 것을 시키실까 봐 고개를 숙이는 6학년이 되었고 난 그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 6학년 담임선생님께서는 중학교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쓸 교실이니 너희들이 마음껏 꾸며 보라시며 교실 환경미화를 우리들 손에 맡기셨다. 몇몇 아이들과 환경미화 준비물을 사 가지고 오는데 마침 그 아이와 내가 칠판만 한 두꺼운 종이를 같이 들고 오게 되었고 그동안 같은 반이 된 적이 없는 터라  별 말없이 걷다가 신호등에 걸려 그 앞에 멈춰 서게 되었다. 갑자기 그 아이가 자기 집 다락방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나 말고도 다락방 소녀가 또 있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꼈고 그 아이의 다락방에 가 보고 싶은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다락방 이야기 끝에다 이상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우리 집 다락방에 재미있는 물건이 하나 있었는데 이제 버리려고 해...”
 “재미있는 물건? 그게 뭔데?

 “ 사실, 나... 2학년 때 네가 너무 미워서 다락방에 네 이름 써서 붙여 놓고 포크로 던져서 맞추고 그랬어. 그러고 나서 너 볼 때마다 사과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 미안해."


 그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교실까지 왔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누군가가 3년이 넘게 그것도 이름만 들어도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다락방이라는 곳에서 내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고 생각하니 어린 마음에 짚으로 인형을 만들어 땅에 묻고 뾰족한 침으로 찔렀다는 장희빈 이야기가 생각나서 다리가 후들거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난 그 후로 다락방에 올라가지 않았고 더 이상 다른 사물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내가 다락방에 올라가지 않자 나의 다락방은 곰팡이 냄새나는 창고가 되었고 가끔 문을 열어 보면 폐쇄된 공간 특유의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나를 더욱 두려움에 떨게 했었다. 그 후로 우리 집은 이사를 했고 난 더 이상 다락방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그 아이를 다시 만난 건 이십 년이 지난 후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였다. 결혼하고 자기 아이 초등학교 입학식에 갔는데 교장 선생님이 우리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다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으로 그 아이는 다시 내 앞에 나타났고 난 그 아이를 보자마자 그동안 잊고 지냈던 다락방 생각이 났다. 내게서 다락방을 빼앗아 갔던 그녀가 다시 내 앞에 나의 다락방을 찾아들고 온 것이다. 만일, 그녀가 어린 시절 내게서 다락방을 빼앗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면 지금쯤 대형 서점의 수많은 책 중에 내 이름 석 자 박힌 책들이 자리를 메웠을까? 아마 그럴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발효가 덜 되어 아직 배추 냄새가 가시지 않은 덜 익은 글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의 심장은 차가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사람의 심장이 뜨거우면 글이 읽는 사람의 손바닥 위에서 다 녹아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난 다락방에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다락방을 나와서 글에 담아야 할 것들을 찾았다. 이제는 다시 다락방에 들어갈 차례이다. 내 심장이 차가워지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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