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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uda Jan 22. 2020

내 한숨에 내가 넘어져서...

쉼이 시작이다.

밴쿠버에 산 지 2 년.
한국에 살았던 시간이 여기 살았던 시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었는데 이번에 한국에 갔을 때는  2년이란 시간이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그 긴 시간을 잠시 잊게 했다
마침 도착한 그 날이 전대미문 미세먼지 최악인 날이었다
남편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말하며 평소에 쓰지 않던 마스크를 쓰며 나와 딸아이에게도 건네준다
난 오랜만에 찾은 엄마 집 같은 한국이 마냥 좋아 미세먼지 따위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한 30분 걸었더니 목에 모래가 들어간 것처럼 따끔거리고 혀도 까끌까끌했다

남편은 담배를 끊었다 다시 피우는 것과 같은 거라 했다
오토바이의 배기가스가 이미 미세 먼지 가득한 세상에 티도 안나는 매연을 뿜어내며 지나간다
공기를 오염시킨다는 것은 자신이 오염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문득 공기가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게 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기가 숨을 쉴 수 있게 해 주는 거니까 결국은 공기가 글을 쓰게 해 주기도 하는 거였다
평생 살 던 곳이었는데 잠시 좋은 공기 속에 있었다고 몸이 이렇게 빨리 반응을 하고 있었다
우리 몸이 깨끗해지는 시간과 방법은 생각보다 빠르고 단순한 거였다

이번 겨울.

3주 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잠시 내가 속해 있지 않은 곳에서 과거에 내가 속했던 곳을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마치 동화 속 마술 거울에 비친 지난 시간들을 거울 밖에서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현재의 공간에서 과거의 시간을 바라보는 것.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체험이었다
가끔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걸까 의심해도 결국은 모두가 가는 방향이 맞을 거라 생각하며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열심히 남보다 빨리 달리고 있는 사람들.
그 속에 내가 있었다
24시간을 더 많이 쪼개고 나누어 25시간처럼 살았었다
많은 것이 필요하기도 전에 나를 괴롭히고
가끔은 많은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음에도 나를 괴롭혔지만 나는 내가 누구보다 바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난 내 삶에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며 살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언제나 이 것을 하면서도 저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삶이었다
그러다가 그 한숨을 쉬었던 것이다
하루의 시간을 달리다 주저앉아 머리 끝에서 시작해 발 끝에서 끝나는 그 깊은 한숨을.
그리고 느꼈다
계속 더 타 오를 수 있다고 느끼지만 꺼질 것 같은 나를..
몸은 오직 현재의 나의 존재를 드러낼 뿐, 다음 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는 것을..
그것이 우리가 태양과의 적당한 거리 유지하는 이유라는 것을..
그렇게 난 내 한숨에 넘어져 지금 이곳에 와 있다

그리고 하루하루 내 삶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며칠 째 내리던 눈이 어제부터 내리는 비에 다 녹아 이제 막 세수를 하고 나온 딸아이 얼굴 같다

내 인생의 한구석에서 방치되어있던 사라져 가고 있던 내 삶들을 하나하나 꺼내 다시 닦으며, 아이 역시  자신의 인생을 도둑맞지 않게 잘 지키는 법을 배워 자신의 한숨에 자신이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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