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과 파도

하늘을 보아도 아프다면 벚꽃을 보자

by 델리만쥬


* 2024.3월 말에 기록했던 내용입니다

찍은 지도 벌써 3주 가까이 된 벚꽃. 신촌에서 찍었다.




가끔은 아프더라도 아플 걸 알더라도 그 흔적을 쫓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벚꽃과 그 꽃봉오리는 그런 것들 중 가장 나와 무관하기에 가장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닐까


다시 피지 않을 꽃이라 하더라도 우린 그 꽃을 죽었다고 하진 않는다


피고 진 자리를 보며


그저 기억으로 쫓을 뿐이다 아주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해서.



나한테 있어 다시 피지 않을 시간들, 사라져 가는 흔적들은 모래 같아서 결국은 내 손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텐데


손아귀라도 쥐어보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더랬다


흔적들을 쫓는다는 미명 하에,

어차피 사라질 흔적들을 쫓느라, 결국 과거에 머무르느라 현실에서 도태되는 건 아닌지


정말 하루가 멀다하고 트렌드가 바뀌는 시점에 어떤 식으로 앞길을 만들어내야 할지 그저 막막했다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며 의미 없는 메아리를 만들어내면서



도태될까봐 무서워하는 건지 도태될 수 있는 이 사회를 무서워하는 건지 도태 후 돌아오지 못할까 봐 무서워하는 건지 그 대상조차 알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했다


모래가 빠져나간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며

모래의 흔적을 만져보며

마음껏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아파하고 싶은데


내 감정들에 솔직하고 싶었을 뿐인데


입시라는 감옥이, 코로나라는 시대가 가뒀던 나의 모든 것들


갇힌 것들조차도 아픔이라는 낭만으로 포장될 수 있는 청춘을 아파하면서도 누리고 싶었을 뿐인데


그마저도 도태가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아파할 자유가 있긴 한 건지


벚꽃을 보았을 뿐인데 단전에서부터 이상한 아픔이 느껴졌다




과거부터 너의 길을 되짚어보라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에

메일함, 과거 수강강좌, 북마크했던 것들....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주워들은 말조차 무시할 수 없었던 나는 나를 잃어버린 채로


불과 몇 년 전의 나를 만나러 갔다




그때의 나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어서 알아볼 수 없었다


나도 잃고 그때의 나도 잃어버린 것만 같은


결국은 안 하느니만 못한 반추가 되어버렸다



그런 와중에 현실의 일들이 쌓이고 쌓였다 현생은 살아야 했으니


그런 나날을 버티고 버티다


열아홉, 10월의 어느 날 내가 그랬듯 전화를 걸었고




터져나오는 감정의 파도들을 막을 힘도 수단도 없었다


쌓였던 울음과 말이 함께 터져나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나도 못 알아들었는데 무슨 기분이셨을까




한참 후 파도가 쓸고 지나간 모래 위에 올라선 느낌이 들고 나서야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소개받았던, 석사 관련해 이것저것 주워듣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께 감정 컨트롤은 어찌하시냐고




집에서, 친구들한테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닌


외려 거리가 좀 있어야 할 수 있는 이야기 같아서 연락드렸다




그런데 정말 진심으로 대답해주셨다


나는 눈치가 없어서 억지, 반어법 같은 건 잘 못 느낀다


대신 진심으로 대하는 것들은 정말 잘 알아차린다 그걸 느꼈다


전체보기가 되어 돌아온 답은 내 불안에 종지부를, 최소한 쉼표라고 할 수 있는 점을 찍어주었다




별것 아닌 추상체에서 시작된 불안은 작디작은 말이라는 인자로 해소될 수 있었음을 알게 된 허탈함


그러나 허탈한 만큼 가벼워진 마음


그제서야 편안히 누워 잘 수 있었다



저 말이 너무 고마웠다


힘겹게 죽어가던 심장을 새로 끼워준 느낌이었다


저 말들을 통해, 내 손에는 없어도 보잘것없는 지금의 나를 만든, 귀한 양분으로 변화했음을 알게 되었거든


맞다 열아홉 살의 나는, 터져나오는 감정을 계단에서 숨기느라 울음을 주먹으로 막는 아이였고 지금은 아니다


그때의 나는 여기저기 끌려다니기 바빴는데 지금은 막막해도 내 인생을 만들어내겠다는 포부를 보이는 어른이 됐다는 걸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정말 큰 위로가 되어줬어.


눈물이 따뜻하다고 생각한 건 오랜만이었고 허물 벗은 매미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현실에서의 내 책임들을 마저 다할 수 있었다


벚꽃을 보던 짧은 시간 파도는 몰아치다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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