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그레타 거윅 꿈에 관한 시리즈, 이토록 사랑스런 고전이라니
제 인생은 스스로 만들 거예요
I intend to make my own way in the world
햇살이 찬란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바닷가에서 마치가의 네 자매가 뛰어논다. 서로 다른 생각, 다른 꿈, 다른 사랑, 다른 인생. 하지만 함께 세상이 떠나가도록 웃을 수만 있다면, 이토록 기분 좋고 사랑스러운 순간이 어디있을까. <작은아씨들>을 보고나서 프랑스 인상주의 작가의 영향을 많이 받은 스페인 화가 호아킨 소로야 (Joaquin Sorolla)의 'Running Along the Beach' (1908) 작품이 떠오르게 된 것은 우연은 아니다. 연출상의 방법론으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오마쥬하여 화면에 띄워낸다는 발상도 참 거윅답다는 생각이었다. 그것들은 충분히 아름다웠으며, 움직이는 그림과 같은 화면 안에서 각자의 캐릭터들은 생동감 넘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단연 올해의 가장 큰 기대작이었다. 감독으로 데뷔하자 마자 <레이디버드>로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거머쥐며 연기도 연출도 잘하는 만능 영화인으로 성장한 그레타 거윅의 차기작은 이미 여러 번 영화화된 바 있는 미국의 소설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작은아씨들>(Little Women)로 정해졌다. 상상해보건대 그레타 거윅은 <작은아씨들>을 만나고 자신의 삶을 떠올렸을 것이며, 나는 그녀가 그려내는 '조'(시얼샤 로넌)의 모습에서 <프란시스 하>의 '프란시스'(그레타 거윅)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의 '브룩'(그레타 거윅)과 <레이디버드>의 '레이디버드'(시얼샤 로넌)가 연신 겹쳐 보였다. 그녀들은 늘 마음 한 켠에 품고있는 꿈과 이상이 씁쓸한 웃음을 남기는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들을 표현하고는 했다. 참 삶이란, 타이밍이란, 상황이란 '뭐 같다'라고 할지, 한 치 앞을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들 삶이며, 주변에는 잘 나가고 멋지고 꿈에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것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 껏 초라해지기도 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꿈을 믿고 그냥 한 번 날아갈 듯 달려보기도 하는 것이다.
줄거리는 원작에 상당히 충실한 편이다. 마치 가의 둘째 '조'를 중심으로 풀어져나가는 서사는 첫째 '메그'(엠마 왓슨),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넷째 '에이미' (플로렌스 퓨)의 꿈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영화적 시간이 비선형적 방식으로 진행되는 상당히 현명한 방식을 택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스토리와 결말에 다가서는데 상당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원작을 아주 잘 아는 관객도, 처음 <작은아씨들> 이야기를 접하는 관객에게도 스토리가 매력적으로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캐릭터들이 입체적으로 살아있어 주는 웃음과 즐거움이 있다. 특히 '조'라는 캐릭터는 당시의 시대가 여성에게 요구하던 가치들을 한 발짝 빗겨간 독립적이고 재능있는 여성을 연기하는데, 한 번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그녀가 아주 귀엽게 외치는 이 대사의 여운이 상당했다.
Jo March: Women, they have minds and they have souls as well as just hearts. And they've got ambition and they've got talent as well as just beauty, and I'm so sick of people saying that love is just all a woman is fit for. I'm so sick of it! But... I am so lonely.
여성에게 아름다움과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세상이 미치도록 답답하고, 나의 생각과 마음과 꿈과 열정이 분명히 있는데, ... 하지만 외로운 것은 외로운 것이다. 그래서 사랑만을 찾아 결혼을 택한 '메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그리고 본인이 사랑했던 혹은 본인을 사랑했던 사람을 선택한 '에이미'의 결정을 마냥 축하할 수 없으면서도 '조'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한마디로 세상에 사람이 그렇게 '쿨'할 수는 없는거다!) 하지만 본인의 운명이 인도하고 있는 길은 분명히 글을 쓰는 것이며, 밤새도록 적어내려가서 어떤 이야기를 세상에 남겨야하는 그 길을 따라가게 되는 것. 그래서 그녀의 길은 스스로 만든 것이 된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길, 기분좋은 여운이 상당하다. 참 잘 만든 영화를 기어이 만들어 낸 그레타 거윅이 떠올랐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낸 대견한 '조'를 떠올린다. 그리고 앞으로 나의 여정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이어지질지에 대해서 기분좋은 마음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